“가스관이 남북관계 왝 더 도그”… 3국 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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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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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러 가스관 연결 실무논의 급물살

남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스관 프로젝트 구상이 한반도 정세에 큰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북-러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진 데 이어 한국도 11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갖고 이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가스관 사업을 매개로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러 3국간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2일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다시 가스관 사업을 거론했다. 그는 ‘왝 더 도그(wag the dog·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가스관 사업이라는 ‘꼬리’를 통해 북핵문제와 천안함, 연평도라는 ‘머리’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1일 “가스관은 한 번 깔면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속도 붙는 실무 논의

북-러, 한-러 양자간 가스관 연결 협의는 이미 진전을 보이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26일 평양에서는 빅토르 바사르긴 러시아 지역개발부 장관과 이용남 북한 무역상이 경제협력위원회를 계기로 회담했다.

바사르긴 장관은 다음 달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한국 당국자들을 만나 가스관 연결 문제를 협의한다. 이에 앞서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스프롬이 북-러 간의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실무적인 협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러, 한러의 연쇄 협의에 이어 남-북-러 실무협의가 열리면 가스관 연결사업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담은 합의 각서(memorandum)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는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이나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양국 정상은 그간의 실무협의를 토대로 가스관 사업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 가스관 사업에 욕심내는 러시아

러시아는 이 프로젝트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부 시베리아의 경제적 부흥과 유럽에 편중된 가스 수출의 다변화를 위해 ‘사할린-3’ 같은 대형 가스전을 개발해온 러시아에게 한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박이 아닌 가스관 형식으로 가스를 공급하면 동부 시베리아의 소규모 가스전까지 연결해 수출할 수 있다.

수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러시아에 매력이다.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에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수출해오던 것을 파이프라인 방식으로 바꾸면 가스 액화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아울러 러시아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축소됐던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이를 앞세워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하고 러시아도 참가하는 3국 정상회담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대통령 시절인 2002년 시베리아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주선하고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하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3국 정상회담도 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푸틴 당시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남북 정상회담 중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3국 연결 가스관 사업의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 3국 가스관 연결의 복잡한 셈법

정부 당국자들은 가스관 사업이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프로젝트”라며 “3국이 함께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실제 착수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경수로 건설 과정에서 북한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그냥 중간에 끊어버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업 논의 과정에서만 수많은 문제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경수로 건설과정에서 북한이 사소한 이유로 공사 인력을 억류하는 등 진행에 어려움을 겪은 전례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당국자도 “TSR-TKR 연결조차 진행이 안 되는 상황인데 가능하겠느냐”며 정치권의 핑크빛 전망을 경계했다.

정부는 북한 내 가스관 연결은 기본적으로 수출 당사자인 러시아가 북한과 논의할 문제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북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부담도 러시아가 지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가스가 최종 수요자에게 도달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북한에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하는 등 여러 안전장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나진에서 휴전선까지 740km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북-러 3국을 연결하는 가스관의 총 길이는 약 2400km로 이 중 북한 구간은 최단거리로 잡았을 때 나진∼원산∼휴전선까지 약 740km에 이른다. 연간 100억m³의 천연가스(PNG)를 수송할 가스관 지름의 크기는 1.7m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스관 공사에 필요한 기간은 대략 2년, 비용은 4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북한이 노선변경을 요구할 경우 길이와 비용, 사업기간 등이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 가압설비와 송전시설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해야 하고 점검인력이 오가는 도로 등도 가스관 주변에 만들어야 하므로 비용은 더 늘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성규 박사는 “기술적인 분석 외에 사업 형태가 어떻게 될지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러시아 가스프롬이 주 사업자가 되고 여기에 한국 등이 지분을 출자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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