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파키스탄 北외교관 부인 석연찮은 피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술밀매 일삼던 남편 노린 총탄에 희생”…
‘北 핵개발 뇌물’ 제보했던 前 BBC 특파원 주장

1998년 6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한 고급 주택가.

주파키스탄 북한 대사관 강태윤 경제참사관은 부인 김신애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진입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집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강 참사관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한방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인 김신애가 쓰러졌고 바로 숨을 거뒀다. 강 참사관의 집은 고급 주택가로 중국 무기업체 임원과 일본 외교관들도 세를 들어 사는 동네다. 강 참사관 집에는 하인뿐 아니라 요리사도 있었고 정문에는 무장경비원이 있었다.

누가 북한 외교관 부인을 죽인 것일까. 쉬쉬하면서도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외신들은 김신애가 북한과 파키스탄 간의 핵·미사일 거래에 관한 정보를 서방 정보당국에 유출한 혐의로 북한 간첩으로 보이는 괴한들에게 살해됐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보부가 공작에 가담해 살해했다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파키스탄 군 당국은 ‘단순 사고’로 처리했다. 이웃집 무장경비원의 총을 들고 있던 요리사가 실수로 발사한 총탄에 맞은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석연치 않은 조사 결과에 대해 북한과 파키스탄의 은밀한 군사거래 때문에 진실을 덮어두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후 미스터리로 남은 김신애 피살사건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영국 BBC 파키스탄 특파원을 지낸 사이먼 헨더슨 워싱턴 극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에게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당시 총격의 타깃은 김신애가 아니라 강 참사관이었으며 살해 이유 또한 핵·미사일 거래 정보 유출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7일 포린폴리시(FP) 기고문을 통해서다. 헨더슨 연구원은 북한이 1998년 핵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파키스탄 군 수뇌부에 뇌물을 건넸다는 전병호 북한 노동당 비서의 편지를 칸 박사로부터 입수해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한 바 있다.

▶본보 8일자 A6면 참조
A6면 WP, 칸 박사 진술서-北노동당 비서 편지 공개


헨더슨 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강 참사관은 이슬라마바드 외교관 전용 면세점에서 술을 사서 현지 암시장에 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 평양에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주류 밀매를 하면서 이익을 남겨 대사관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게 당시 관행이었다. 강태윤은 주류 밀거래를 통해 부정한 돈벌이를 하면서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현지인들의 원한을 사는 일을 하는 바람에 타깃이 됐다. 헨더슨은 “(부인의 죽음은) 강태윤의 탐욕이 빚은 결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 노동당 비서 전병호가 칸 박사에게 보낸 문제의 편지에는 “타깃은 강태윤이었다고 확신하며, 여전히 강태윤이 위험한 상태”라는 대목이 나온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