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 4명 납북說’ 숨기기 급급한 국방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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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정권 대북공작과 연관됐나” 의혹 번지는데도…
“구체 내용 밝힐 수 없다” 모호한 태도로 혼란 키워

국군 영관급 장교 4명이 1999년 북한에 납치됐다는 주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지만 국방부는 사실 확인을 외면한 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최근 서울고법 형사2부에서 진행된 공판에서 흑금성 박채서 씨(57)의 변호인은 1차 연평해전이 터진 1999년 합동참모본부 소속 정모 중령이 중국 국경에서 북한에 납치됐고, 대령 3명도 북한에 납치 또는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 일간지 대북전문기자 정모 씨는 당시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확인했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군 안팎에선 과거 정권 차원에서 벌였던 군 당국의 해외 대북 공작 실체가 10년 만에 드러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북한에 납치됐다는 장교들의 소속과 신분, 중국에서 벌인 공작임무 등을 둘러싼 의혹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일각에선 박 씨가 ‘작전계획 5027’ 등 군사기밀을 북한에 유출한 혐의를 벗기 위해 정보기관 소속 대북 공작원으로 중국에서 활동할 때 벌어진 사건을 폭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국방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시종일관 애매한 태도를 고수해 국민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20일 “4명이 납북됐다는 것과 대령급 장교가 포함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면 당시 한국군 장교가 한두 명이라도 납북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 양해해 달라”고만 했다.

군 소식통은 “국방부가 사실상 국군 장교의 납치 의혹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셈”이라며 “10년 넘게 이를 숨겨야 했던 이유를 밝힐 수 없는 속사정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대북 공작 내용이 공개될 경우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주변국과의 관계에도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보고 정부 차원에서 국방부에 함구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군 장교가 납치되는 지경이 되도록 무능력했던 과오를 숨기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국방부의 태도는 국민의 신뢰 회복과 투명한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과거 정권들이 비밀리에 북한과 모종의 공작과 거래를 하면서 남북관계를 왜곡시킨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국방부가 의혹을 감출수록 떳떳하지 못해 그런 것 아니냐는 불신만 커질 것”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국민에게 밝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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