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정부 정보력 부재가 ‘김정은 방중’ 오보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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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당초 “김정은 방중” 청와대 보고… 정부 뒤늦게 中서 “김정일” 연락 받아

20일 새벽 특별열차 편으로 전격 방중한 주인공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국 언론이 약 9시간 동안 오보를 내는 상황이 빚어졌다. 우리 정부의 정보수집 능력 부재도 오보 사태의 주요 원인이었다.

연합뉴스는 이날 오전 9시 14분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집단 오보의 시작이었다. 방중 주체가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문의가 정부 당국에 쏟아졌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두고 봐야겠지만 그동안의 정황으로 봐서 오늘 새벽 김정은이 방중한 것으로 안다. 단독 방문인지, 김정일과 같이 갔는지는 좀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은 혼자 간 것으로 보이며 방문지는 베이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김정은 방중은 기정사실화됐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인터넷과 TV 등을 통해 김정은 방중 소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청와대는 신중함을 유지하긴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11시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면서 “누가 갔는지는 듣지 못했다. 언젠가 중국도 상황을 알려주지 않겠느냐”고만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에서 누구도 확인해 주지 않을 것”이라며 “지도자 자격이 검증되지도 않은 자의 방중 여부를 놓고 우리가 일일이 평가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오후 2시경 기자들과 만난 정부 고위관계자도 “특별열차가 (북-중) 국경을 넘은 것은 맞는 것 같다”는 설명만 내놨다. 북한 고위 인사가 김정일인지, 김정은인지는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도 특별열차를 탄 사람은 김정은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던 것은 분명하다. 김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 5월과 8월 2차례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또 정보기관 고위관계자가 국회에서 “중국 고위층이 김정은을 네 차례 초청했다”고 설명한 점도 이런 관측의 근거였다.

이날 9시간 동안 ‘김정은 방중설’은 전 매체를 통해 보도됐지만 명확하게 “잘못된 기사”라는 말을 하는 당국자는 없었다. 일부 당국자들은 김정은의 방중이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코멘트도 내놨다.

그러나 오후 5시를 넘어서면서부터 대반전이 벌어졌다. 방중 주체가 김 위원장으로 확인된 것이다.

정확한 통보 시간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김 위원장 방중 사실을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5월 김 위원장 방중을 며칠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열렸는데도 중국 정부가 사전에 김 위원장 방중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8월엔 김 위원장이 국경을 넘은 직후 이 사실을 파악한 우리 정부 관계자가 언론에 방중 사실을 비공식 확인해줬다.

하지만 이번엔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국정원이 각종 물적 인적 정보를 종합해 오전에 ‘김정은 방중’이라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 오보소동을 키웠다는 관측이다. 정부 소식통은 “국정원이 당초 김정은 방중이라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판단한 기준이 무엇인지가 정보당국의 정보력 부재에 따른 오보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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