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資法 기습처리 후폭풍]기업-노조 ‘쪼개기 후원’땐 나랏돈으로 로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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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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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11월 서울 강북구에 있는 최규식 민주당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서울북부지검 직원들이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4일 기습 통과시킨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이 사건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6명은 면죄부를 얻게 된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11월 서울 강북구에 있는 최규식 민주당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서울북부지검 직원들이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4일 기습 통과시킨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이 사건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6명은 면죄부를 얻게 된다.
“아예 대놓고 뇌물을 받겠다는 얘기 아니냐.”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기습 통과시킨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두고 법조계는 한마디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당장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면죄부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자금법 자체가 형해화(形骸化)돼 앞으로 정치인이 받는 돈은 성격을 불문하고 처벌하기 어려운 ‘성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나랏돈’으로 로비 길 열어줘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이나 노조, 이익단체들이 ‘나랏돈’으로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벌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부분이다. 정치자금법은 개인이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한 차례 10만 원, 연간 120만 원까지 익명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후원금 기부 활성화를 위해 연간 10만 원 이내의 정치후원금은 연말 소득공제 때 국고로 전액 환급해주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덧붙여 법인이나 단체가 구성원에게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몰아주도록 요구하는 것까지 허용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나 노조는 “우리에게 호의적인 A 의원에게 10만 원씩 후원금을 보내자”는 요구를 공공연히 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나라에서 돌려받을 돈이니 기왕이면 ‘우리 편’에게 내자는 식이다.

○ ‘의원 업무’ 주장하면 처벌 어려워져


현행 정치자금법은 ‘공무원’의 업무에 대한 청탁 및 알선의 대가로 후원금을 받는 것을 금지했지만 개정안은 이를 ‘본인 외의 다른 공무원’으로 고쳐놓았다. 이 부분 역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법인이나 단체에 뇌물성 후원금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개악(改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은 그동안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을 공무원에게 전달하는 행위 등까지 폭넓게 국회의원의 ‘직무’로 인정해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회의원이 후원금을 받고 공무원에게 청탁 내지 사실상의 외압을 행사했더라도 소속 상임위의 소관기관이거나 지역구와 관련된 경우 ‘본인의 업무’라고 주장해 형사처벌을 면할 길이 열린 것이다.

○ ‘소액’ 신원 안 드러나 물밑거래 우려


게다가 정치자금은 정치인이 먼저 요구하더라도 불법이 아니다. 검찰과 법원은 정치인이 받은 돈이 뇌물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통상 정치자금법을 적용해 형사처벌을 해왔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본인의 ‘업무’를 통해 관련 기업, 단체 등을 압박하면서 뒤로는 후원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가령 기업 오너 또는 최고경영자의 국회 출석을 거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부담을 느끼는 해당 기업에 후원금을 요구하는 식이다. 이는 분명히 정치자금이라기보다는 뇌물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돈을 준 쪽과 받은 쪽 모두 처벌 대상이 되고 형량이 훨씬 높은 뇌물죄의 특성상 양측이 뇌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리가 없다. 결국 뇌물성 자금이라는 의심은 가지만 뇌물죄로도, 정치자금법 위반죄로도 처벌이 모두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사실상 거액의 뭉칫돈을 받고도 기부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검은 뒷거래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원치 않는 기부 압박도 처벌 안 돼


지금까지는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해 기부를 요구할 경우 처벌을 받도록 돼 있었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진이 직원에게 특정 정치인을 후원하도록 권고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피고용인의 의사를 억압한 것으로 보고 처벌해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를 이용해 강요’한 경우로 요건을 강화했다. 법적으로 ‘강요’는 협박, 폭행 등으로 상대방이 반항할 수 없게 해 의무가 없는 일을 하게 만든 경우를 가리키기 때문에 하급자에 대한 단순한 후원금 기부 권고는 ‘강요’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앞으로는 회사원이나 노조원이 윗사람이나 동료의 눈치 때문에 원치 않는 후원을 요구받는 상황에 처해도 법적 제재가 불가능해진 셈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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