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판문점 송환 무산]침묵 →“기다려라” →“돌아가라”… 北도 고민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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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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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 4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이날 북한으로 송환될 예정이던 앳된 얼굴의 한 북한 여성이 판문점행 버스에 오르기 전 남측 보안요원 앞에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걷고 있다. 파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착잡 4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이날 북한으로 송환될 예정이던 앳된 얼굴의 한 북한 여성이 판문점행 버스에 오르기 전 남측 보안요원 앞에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걷고 있다. 파주=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4일 오전 10시경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주차장 앞에 대형 버스 2대가 멈춰 섰다. 왜소한 체구의 남녀 27명이 버스에서 내려 어색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날 판문점을 통해 소환될 예정이던 북한 주민들이었다.

판문점으로 가기에 앞서 휴식차 잠시 공원에 들렀을 때만 해도 고향의 가족에게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은 어둠이 깔릴 때까지 결국 북한의 귀환 승인을 얻지 못하고 군사분계선(MDL) 코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데도 정작 북한 당국이 인도를 거부하며 버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때문이다.

○ 결국 북한에 못 돌아간 27명

이날 외부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북한 주민 상당수는 전날 조선적십자회 대변인 담화에서 주장한 대로 ‘어린 자식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가정주부’로 보였다. 여성들 사이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눈에 띄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담담함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판문점 인근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던 이들은 이날 저녁 남한의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식에 실망과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들은 이날 북한 당국이 일행 중 4명의 귀순을 강하게 비난하며 나머지 27명의 송환 절차에 일절 협조하지 않으면서 허공에 뜬 미아(迷兒) 신세가 됐다. 극심한 식량난 속에 생계를 위한 조개잡이를 나왔던 이들은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 저울질 끝에 돌아선 북한

판문점은 정전협정에 따라 관리되는 지역이라서 남북 양측이 허가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북측의 허가 없이 27명이 무작정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오전부터 판문점 남측 연락관을 통해 북측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어제 통지한 대로 27명의 송환을 요구하니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측 연락관은 전화를 받고도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송환 예정시간이었던 오전 11시가 지나고도 묵묵부답 상태가 계속되자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판문점 업무가 끝나는 오후 4시경 북측은 “판문점 연장근무를 하자”고 제의했다. 남측은 북측이 뭔가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 속에 연장 근무에 들어갔다. 그러나 북한은 오후 6시가 되자 돌연 “31명 전원을 송환하라”고 구두로 통지한 뒤 판문점 요원들을 철수시켜 버렸다. 북한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에 엄중한 효과를 미치게 될 것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 당국이 지게 될 것”이라는 기존의 협박도 되풀이했다.

○ 늪에 빠진 송환문제에 비판론도

북한이 표류 주민의 귀순 문제를 놓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주민 4명 중 1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을 때도 큰 이견 없이 나머지 3명의 송환에 응했다. 자국 주민들을 판문점 앞에 세워놓고 신경전을 벌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던 선박 인계도 연기됐다.

일부 전문가는 정부가 북한 주민들에 대한 합동신문을 지나치게 오래 끌어 이런 사태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이들이 월경한 초기에 의도적인 남하인지, 사고인지를 빨리 판단해 송환 및 귀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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