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집권4년차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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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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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2일 신년연설문 독회(讀會)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권력누수(레임덕)가 없다”고 했다. 이틀 전 일부 참모가 ‘집권 4년차인 올해 정무적으로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한 것을 일축하듯 “올해는 가장 일하기 좋고 결실을 볼 수 있는 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서울시장 때도 임기 마지막 날 퇴근시간까지 일한 뒤 퇴임식을 했던 이 대통령이 전국선거가 없는 올 한 해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국정 고삐를 바짝 죄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바윗돌을 산꼭대기로 굴려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5년 임기의 유한(有限)한 권력에 레임덕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레임덕 없다’는 말이 정권 내부에서 나오는 것부터가 ‘집권 4년차 증후군’의 신호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 이재오 특임장관이 새해 벽두부터 약속이나 한듯 개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하산길에 들어선 집권 주류세력의 불안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민주당이 반대하고 당내 친박(친박근혜)계도 반대하는 개헌을 주류들이 주장하는 것은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는 것을 막고 흔들리는 친이(친이명박)계의 구심력을 유지해보려는 의도라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50%에 이르는데도 ‘월박(越朴·친박으로 이동)’ ‘주이야박’(晝李夜朴·낮엔 친이, 밤엔 친박)을 감행하는 친이 의원들이 나타나는 것도 불안감 때문이다. 지난해 말 예산안 강행처리 이후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청와대를 향해 ‘법안 강행처리 사절’ 간판을 내건 것도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권력의 중심축이 이동하기 시작한 여의도 현실과 무관치 않다.

전직 경찰총수에 이어 청와대 감찰팀장까지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운영권 로비 의혹에 연루된 것은 김영삼 정부 5년차 벽두에 터진 한보게이트를 연상시킨다. 7개월간 7억 원의 특권적 전관예우를 받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시절 인사검증 실패와 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과 무관치 않은 사람을 국가 최고 감찰기관의 수장으로 내세운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정권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직언을 하는 사람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고 적당히 일하는 척하면서 내 자리 내 몫만 챙겨 나갈 계산을 하고 있는 참모와 고위공직자들만 득실대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측근 김광일을 비서실장에 앉히고, 김대중 대통령이 박지원 현 민주당 원내대표를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컴백시키고,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을 민정수석비서관에 복귀시킨 것도 대체로 이 무렵이다. 오랜 동지적 관계에 바탕한 인적 풀이 약한 이 대통령의 참모그룹은 그때그때 실용적 필요에 따라 관계를 맺은 ‘이익연합체’ 성격이 강하다. 집권 4년차에 찾아오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는 인적체제 정비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국정운영 방식은 ‘선택과 집중’밖에 없다. 경제와 안보라는 핵심 과제에 집중하고 개헌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힘에 부치고 주특기도 아닌 과제는 차기 대선주자들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는 부정,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사정, 감찰의 핵심에만큼은 임기 초 약속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기용해 ‘먹튀(먹고 튀기) 세력’의 등잔 밑 부패를 차단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4년차 마무리는 대한민국의 선진화 진입 여부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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