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치된 국유지 280㎢ ‘서울면적 절반’… 알짜배기 34곳 가보니…

  • Array
  • 입력 2010년 6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쓰레기장-늪지 된 수십억 금싸라기땅… “정부 地테크 0점”

잊혀진 땅… 실태는
수원 옛 서울농생대 용지
수풀 우거진채 7년째 방치
대구 가톨릭병원 옆 4250㎡
68억짜리 대지 공터로 놀려

낮은 활용… 대책은
주차장으로 많이쓰지만
거의 사용료 못 받는 ‘불법’
“보존 대신 활용정책 전환
재정에 도움되게 개발을”

《‘정글’에라도 온 것 같았다. 도로변에는 잡풀이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길 한쪽에는 ‘우선멈춤’ 표지판이 찌그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겨우 찾아낸 ‘농업공작실’은 유리창이 깨지고 벽체 곳곳에 금이 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7년 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이 자리 잡았던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103-2 일대의 현재 모습이다. 2003년 9월 농생대가 서울 관악캠퍼스로 옮겨간 뒤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갔지만 국가가 하는 ‘관리’라곤 올해 70세인 엄세진 씨가 털이 듬성듬성한 개 2마리와 출입문을 지키는 게 전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현장을 확인한 국유지 관리 실태는 임자가 있는 개인 땅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16개 시도에 걸쳐 방치된 나라 땅은 지난해 말 기준 280km²(8500만 평)로 서울 면적의 절반에 이른다. 토지 종류도 임야와 논밭뿐 아니라 주택용지 주차장용지 공원용지 공장용지 등으로 다양했다. 방치된 나라 땅이 농촌과 일부 산간벽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도시 중소도시 등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이다.

취재팀은 이 중 3.3m²당 평균 120만 원이 넘는 고가(高價)의 나라 땅 34곳(1.56km²·47만 평)의 실태를 파악했다. 금싸라기 땅임에도 정부 기관의 무관심으로 사실상 버려진 땅이 13곳으로 가장 많았다. 어울리지 않는 용도로 전용된 지역이 10곳, 주인 없는 땅으로 알고 개인이 무단 점유한 지역이 9곳, 극심하게 훼손돼 복구가 쉽지 않은 지역이 2곳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공무원들이 ‘내 땅’이라고 생각한다면 저렇게 버려둘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집을 지어 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앞당겨 주거나 개발사업을 통해 재정수입을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정부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임자 없이 잊혀진 땅 280km²

대구 북구 읍내동 가톨릭병원에 인접한 68억 원짜리 대지는 지난 7년 동안 주민들에게 ‘미스터리’였다. 병원 학원 등 5∼10층 높이 상가가 밀집해 있는 번화가 한가운데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움푹 파인 채 텅 빈 이곳은 혐오감과 공포감까지 불러일으켰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하는 이모 씨(35·여)에게 이 공터는 ‘쓰레기 천지에, 학생들이 밤에 몰래 술 마시고 패싸움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한 중심상업지구. 대규모 아파트단지 인근에 KT광주 본사, 관광호텔이 즐비하지만 대로변 4171m²의 땅은 ‘외로운 섬’처럼 버려져 있다. 공시지가만 43억 원에 이르는 알짜 땅이지만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무단으로 침범하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철조망 안쪽으로는 건설자재, 쓰레기 더미 등이 쌓인 채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997년 취득한 뒤 13년째 방치하고 있다.

관리 부실로 멀쩡한 땅이 늪지가 돼버린 곳도 있다. 부산 강서구 대저1동 1246에 있는 4609m²의 땅은 비가 오면 고인 물들이 빠지지 않아 악취를 풍긴다.

땅값이 전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서울에도 노는 국유지가 많다. 법무부가 보호관찰소를 지으려고 1995년에 산 뒤 16년간 유휴지 상태로 내버려 두고 있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140 일대 4331m²가 대표적이다. 공시지가만 81억 원에 이르는 ‘금싸라기 땅’이다. 주변에는 아파트 상가 교육문화회관 등이 밀집해 있지만 이곳에는 비닐하우스 20여 채만 들어서 있다.

○ 국유지에 수익 낮은 주차장만 즐비

방치된 나라 땅 중 상당수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장기 토지이용계획이 없는 빈 땅에 마땅히 할 만한 사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불법 주차장이 대부분이다.

설악산 소공원 초입에 있는 강원 속초시 설악동 일대 땅 8123m²는 임대업자가 국가와 별도의 대부계약도 맺지 않고 주차장으로 이용하다 2008년 변상금을 부과받았다. 주차장을 관리하는 이강호 씨는 “과거 지역을 정비하고 주차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일부 국유지가 포함됐다”며 “시에 사용료를 내는 쪽으로 협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D리조트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해수욕장 인근 국유지를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원래 행정안전부 소유인데 관리를 맡은 부안군이 토지소유권 파악을 제대로 못 해 D리조트의 주차장으로 제공했다. 리조트 측은 “주차비를 받지 않고, 리조트 근처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도 이곳에 차를 대고 있으니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83-1 일대 4114m²는 외교통상부가 1979년 취득한 뒤 외빈 영접용 주차장으로 주로 활용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곳을 ‘도심 땅 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사례’로 지목한다. 땅 일부가 뉴타운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뉴타운사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용도로 쓰지도 못한다.

○ 국유 산지에 가족묘 조성하기도

나라 땅을 주인 없는 토지로 여겨 개인이 무단 점유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충남 서산시 인지면 풍전리 산21 일대에는 가족 분묘가 10개 정도 있다. 산림청이 관리하고 있는 보전산지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및 산지관리법’에 따라 묘지로 쓸 수 없는데도 오래전부터 개인묘지가 들어선 뒤 방치돼 왔다.

인천 중구 도원동 17-5에는 공업사, 주방기기 가게 등이 옹기종기 모여 상가를 이루고 있다. 도로에 인접한 개인 토지 소유자들이 국유지에 건물을 지은 뒤 무단 점유한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됐다. B상회 윤모 사장(68)은 “건물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땅 일부가 국유지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구청에서 갑자기 ‘10년 치 사용료를 내라’는 청구서를 보내와 상인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 구청은 담당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라 땅의 경계조차 몰랐고 상인들은 무단 점유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모두가 나라 땅에 무관심했던 것이다.

고경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보존’에 주력해왔던 국유지 관리정책을 ‘활용’ 위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흩어져 있는 정부의 관리주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인천=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부산·대구=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광주·부안=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국유 미술품도 부실 관리… “28개 정부기관 보유 작품 훼손-오염” ▼

변양균 전 대통령 정책실장이 2005년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신정아 씨의 부탁을 받고 2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사들인 미술품 2점은 지금 정부과천청사 기획재정부 건물 지하 도서실에 걸려 있다. 재정부는 5년에 한 번 감정가를 조사할 뿐 평소 미술품의 상태를 정밀 점검하지는 않는다.

나라 땅뿐 아니라 국가가 소유한 미술품도 방치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보유 미술품을 총괄하는 조달청 사이버갤러리에는 4월 현재 42개 기관에서 1만5476점을 등록해 놓고 있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이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이들 국유 미술품의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28개 정부 기관이 보유한 미술품이 훼손됐거나 이물질로 오염됐다. 20개 기관은 보유 중인 미술품을 관리대장에 기록하지 않았고 30개 기관은 미술품의 등급 분류조차 해두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가 보유 미술품의 전체 감정가가 얼마인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1개 기관은 대장에 기록된 것보다 보유 미술품 수가 부족했다.

조달청은 인터넷상에서 미술품의 수량과 상태를 관리하지만 직접 현장을 방문해 미술품이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지는 않는다. 현재 정부는 1000만 원과 500만 원 이상인 미술품들을 각각 ‘A’와 ‘B’ 등급 국유 미술품으로 분류해 특별 관리하지만 이 작품들에 대해서도 5년에 한 번씩 감정가를 보고토록 할 뿐이다.

특히 외교부는 해외 160여 개 공관에 고가의 미술품들이 있어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워낙 많은 미술품들이 해외에 있다 보니 주기적으로 미술품들의 상태와 가치를 평가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필요하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동아닷컴 인기화보 》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