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협상 막판 ‘北요구 모두 들어줘라’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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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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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심리전방송 중단’ 합의한 2004년 남북장성급회담 전말은당시 합참 심리전참모부장 변상복 예비역 소장 밝혀“우리 대표 ‘못하겠다’ 반발에 李차장 ‘지령이다’ 재차 압박”“심리전 중단 지시 軍문서는 국방장관 서명도 없이 내려와”“양보 대가 서해 긴장완화 합의” 협상 관련 참여정부 인사 해명

“대북 심리전은 북한 정권과 군부의 아픈 곳을 북한 병사와 주민에게 알리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런데도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회담 당시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습니다.”

2002∼2005년 합동참모본부 민사심리전참모부장으로서 군의 대북 심리전을 총괄했던 변상복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회담 종료 직전 우리 협상대표의 반발을 눌러가며 ‘북한 요구를 들어주라’고 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회담 때 어떤 일이 있었나.

“북한은 줄곧 민간 차원이건 정부 차원이건 남북회담을 앞두고 ‘심리전 중지’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2004년 (강원 속초에서) 장성급회담이 열리면서 국방부는 ‘청와대의 뜻이라면 심리전을 중단할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을 갖게 됐다. 하지만 심리작전은 중단하더라도 군이 보유한 장비 제거는 남북한 군비통제 차원의 카드로 활용한다는 전략을 마련해 놓고 협상에 임했다.”

―하지만 결국 장비도 전부 철거하지 않았나.

“그렇다. 회담을 시작할 때 우리 쪽 대표는 합참 소속 박모 제독(당시 해군 준장)이었다. 이종석 차장은 처음에는 박 제독에게 ‘소신껏 일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협상 상황을 모두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협상 막바지에 전화를 걸어 박 제독에게 ‘북한의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이라’고 지시했다. 박 제독은 ‘못 받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 차장은 ‘지령이다’며 청와대의 뜻을 전달했다.”

―어떻게 이런 과정을 알게 됐는가.

“당시 나는 합참 민사심리전참모부장으로 대북 심리전을 총괄하고 있었다. 협상 내용을 알아야 하는 위치다. 내 부서의 실무 장교도 회담에 참여했고 박 제독에게서 여러 차례 직접 들었다.”

현역 중장으로 전역을 앞두고 있는 박 제독은 해군 공보실을 통해 ‘현역 군인으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후 합의는 어떻게 이행됐나.

“6월 4일 합의에 따라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의) 6·15선언에 맞춰 15일에 심리전은 중단됐다. 나는 합참 담당자로서 국방부에 ‘심리전 중단을 문서로 지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동안 지시가 없다가 국방부는 일요일 아침(6월 13일)에 문서를 보내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국방부 장관(당시 조영길 장관)의 서명도 없었다. 이만한 일에 장관 서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장관은 어느 날 심리전 담당 책임자들을 소집해 놓고 ‘어젯밤 TV를 보니 전방의 심리전 장비를 걷어내더라. 누가 지시했느냐’고 물었다. 장관이 몰랐을 리가 있느냐.”

―2004년 이전의 심리전은 어땠나.

“남북 간 심리전은 정치적으로 타결될 수 있다. 1972년 7·4공동성명으로 남북 모두 심리전부대를 없앴다. 그러나 북한이 1980년 일방적으로 심리전을 재개하자 우리도 다시 부서를 만들었다.”

―남북 화해 기류가 있을 당시의 심리전은 어땠나.

“(1차 정상회담을 앞둔) 2000년 4월부터 군에서 ‘물포(물건 배포) 작전’으로 부르던 작전, 즉 라디오 등을 풍선에 담아 북한에 날려 보내기와 전단(삐라) 뿌리기를 자체적으로 중단했다.”

―장성급회담 합의 전 상황은 어땠나.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03년 초) 2개월 동안 나는 강도 높은 심리전을 진행했다. 김정일에 대한 인신공격성 내용도 담아 봤고 북한 인권의 참혹함도 다뤘다. 당연히 북한군은 반발했을 것이다. 이종석 차장이 정권 출범 초기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해 나와 의견차를 드러낸 적도 있었다.”

―한국군의 심리전 재개 방침에 북한이 조준 사격하겠다고 하는데….

“심리전 시작 첫날부터 강하게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음악을 틀고 뉴스를 방송하면 된다.”

―심리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심리전은 다른 군사적 요인, 정치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개해야 한다. 결코 따로 떼어내 볼 수 없다. 따라서 심리전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종합 조율하는 기능을 맡기는 게 좋다.”

당시 협상과정을 잘 아는 노무현 정부 인사는 “서해상의 우발충돌을 막는 일이 더 급했다”며 “북한이 요구하는 심리전 중단을 받아주는 대신 서해에서 군함끼리 대치하지 않고 상대방 민간 선박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동영상 = 軍, 하늘 나는 대잠어뢰 ‘홍상어’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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