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5번째 방중은 ‘외자 유치’ 목적?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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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례 방중 이후 조금씩 개혁
위기상황서 경제개혁 없을듯
‘경제재건 노력’ 보여주되
통치자금 조달 주력할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0년 이후 4차례의 중국 방문을 제한적이나마 개혁과 개방을 심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나 임박한 그의 다섯 번째 방중 이후 북한 경제의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반(反)시장적 외자 유치’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번 방중을 통해 3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데 필요한 달러(통치자금)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 과거 방중 후엔 개혁정책 뒤따라

김 위원장은 2000년 5월 최고지도자로서의 첫 방중과 2001년 1월 두 번째 방중을 통해 중국의 시장경제 발전상을 목격한 뒤 제한적이나마 경제개혁과 특구개방을 결심했다.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은 박사학위 논문 ‘북한 정책결정과정의 조직행태와 관료정치’를 통해 “김 위원장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지도자의 영도와 권위를 훼손하지 않고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첫 방중 직후인 2000년 10월 ‘6·3그루빠’를 조직해 내각이 중심이 된 경제개혁 방안 수립을 지시했고, 두 번째 방중 직후인 2001년 ‘10·3담화’를 통해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 조치를 단행했다. 그는 2003년 9월 박봉주 내각 총리를 기용해 개혁조치의 가속화를 주문하고 2004년 4월 방중하고 돌아온 뒤인 6월 ‘내각 상무조’를 조직해 급진적인 경제개혁 실험을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개혁정책에 따른 시장 메커니즘의 확산과 불평등 심화를 이유로 노동당 등 보수층이 반발하자 2005년 10월 배급제 회복을 계기로 다시 보수적인 경제정책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어진 2006년 1월 방중에 박 총리를 대동하고 중국의 개발특구를 돌아보는 등 외부에 여전히 개혁자의 이미지를 전파했다.

○ 외자 유치에 주력할 듯

최근 북한의 경제적 환경은 과거와 판이하다. 북한 지도부는 2007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을 통제해 왔고 급기야 지난해 11월 30일 화폐개혁과 올해 1월 1일 외환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국가가 시장 메커니즘의 확대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과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민과 엘리트의 반발로 이들 정책이 유야무야된 상태지만 북한 지도부가 다시 경제개혁에 나설 동력은 없는 상태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중국의 경제특구 등을 둘러보는 등 경제 재건에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전파해 외자 유치에 활용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수은북한경제’에 발표한 ‘북한 화폐개혁의 정치경제적 함의’를 통해 “김정일 부자는 후계체제의 구축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지만 곳간(국가의 돈주머니)이 텅 비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시장 배제형 국가통제경제와 외자 유치를 통해 통치자금을 조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중은 외자 유치를 위한 고육책이라는 것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단둥철교 이틀째 점검… 경비 강화는 안해
中당국자 “金방중 들은 바 없다”
철교 보이는 호텔도 통제 안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임박설과 관련해 중국의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이 1일 “현재 그런 방면의 정보를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친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공산당과 조선 노동당 사이에는 줄곧 양호한 왕래의 전통이 지켜져 오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의 언급은 김 위원장의 방중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첫 공식 반응이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브리핑 순간까지 그런 정보를 들은 적이 없다는 뜻일 뿐 하루나 이틀 뒤 심지어 몇 시간 뒤에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외교부는 김 위원장의 방중설과 관련한 확인 요청에 몇 년째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 신의주에 접경한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에서의 반응도 엇갈린다. 사업차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북한 선양(瀋陽) 총영사관 단둥 분소에 최근 들렀던 한 교포 사업가는 1일 “직원들에게서 조만간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설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평소 신중하던 대북 정보 관계자들까지 잇달아 “이미 선발대가 중국에 와 있다는 정보도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점이다.

지난달 31일엔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단둥철교(중조우의교)에서 중국과 북한 측이 철교를 정밀 점검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중국 측 점검은 1일에도 이틀째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의 방중에 앞선 안전 검사라는 관측이 있다. 하지만 철교의 야간조명 수리와 통상 점검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의 방중 시 가장 뚜렷한 징후를 알 수 있는 중국 국경수비대와 단둥 시 공안당국, 출입국관리소 등에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1일 오후 단둥역 국제선 대합실은 열차 운행이 없어 통제하는 것 말고 다른 경비 강화 조짐은 없었다. 해관 업무나 화물 수송 등도 변화가 없다고 화물운송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김 위원장이 방중하면 단둥철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방에 투숙하지 못하게 하거나 야간에 불을 켜지 못하게 하는 등 통제되는 압록강변의 중롄(中連)호텔에 현재 많은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투숙하고 있지만 아무런 제한이 없다.

단둥 시 외사판공실의 자오스(焦石) 부주임도 1일 “김 위원장의 방중과 관련해 아무런 통지를 중앙 정부에서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국가의 지도자가 단둥을 방문한다면 우리 모르게 진행될 리는 없다”고 덧붙였다.

단둥=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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