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금기시된 ‘분당’ 용어, 공식회의에서 첫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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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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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團生散死…뭉쳐야 산다”

세종시 문제로 주류와 비주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내부 공식회의에서 27일 분당(分黨)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됐다. 그동안 금기시되어온 ‘분당’이란 용어가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당내 친이 친박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희태 전 대표(사진)는 이날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항간에 당이 깨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퍼져 있다”며 “당이 이렇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단생산사(團生散死·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정신을 당원 각자가 가슴속에 품고 언행을 한다면 구국(救國)은 아니라도 구당(救黨)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도 회의에서 “분당 얘기가 나올 정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며 “민주적 절차와 토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과 천막당사 시절을 겪으면서도 떠나는 사람 없이 집권당으로 꿋꿋하게 왔다”며 “세종시 문제로 당이 파국을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으로 분당 문제가 여당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11일 이후부터 당내에서는 심심찮게 분당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종시 수정안의 처리 방향을 놓고 친이, 친박 진영이 서로 물러서지 않는 힘겨루기를 벌이는 상황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분당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아직은 우세하다. 분당의 정치적 명분도 그렇지만 분당 이후 정치적 진로도 친이, 친박 진영 모두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분당론을 제기할 경우 자칫 ‘보수 분열의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친이, 친박 진영이 서로 분당 관련 언급을 극도로 피하는 이유다.

정부와 친이 주류 측은 친박 진영을 직접 압박하기보다는 충청 여론의 변화를 유도해 주도권을 쥐려는 우회 전술에 주력하면서 극단적인 충돌은 피하고 있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의원은 “충청 민심이 반대하는 수정안을 무작정 밀어붙일 수 없고 법 통과도 어렵다”면서도 “친박도 충청 여론이 바뀌면 마냥 반대만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 측도 이 같은 분석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결국 충청권 민심이 당내 갈등을 풀고 세종시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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