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 무산때 각국 어떻게 대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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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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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獨 : 국회동의 없이 최소한 지출 ‘준예산’
美-日 : 규모-기한 국회가 정하는 ‘잠정예산’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준예산을 집행한다면 공무원 봉급 지급도 전적으로 유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한국에서도 공무(公務) 마비 사태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까운 사례로 1995년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1995년 11월 중순 대협곡으로 유명한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의 출입문이 닫혔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을 포함해 미국 전역의 박물관, 도서관, 경찰서, 여권 발급소 등도 문을 닫았다.

이런 파행은 엿새 동안 이어졌다. 당시 미국 의회는 정부의 예산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잠정예산(한국의 준예산과 비슷한 임시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잠정예산안을 거부했다. 결국 새 회계연도에서 쓸 수 있는 나랏돈이 결정되지 않는 바람에 약 80만 명의 연방공무원은 강제휴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과 한국은 서로 다른 준예산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서민과 고통분담 차원에서 공무원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임금 지급을 늦추는 것일 뿐이어서 잠정예산조차 집행되지 못해 공무원들이 강제로 임시휴가를 떠나야 했던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세계 각국이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임시 예산’ 제도를 갖고 있지만 운용 시스템이 각기 다른 데서 온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잠정예산제도를, 한국과 독일은 준예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잠정예산 역시 임시로 마련해 예산 집행의 공백을 메운다는 점에서 준예산과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잠정예산은 반드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준예산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 따라서 미국 영국 일본은 정부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국회 주도로 잠정예산을 만들고 이를 다시 행정부가 서명해야만 잠정예산의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1995년 11월 미국의 공무 마비 사태는 공화당 주도로 만든 잠정예산안을 클린턴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생기게 됐다.

준예산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기 때문에 행정부가 자체적으로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달 31일까지 국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내년 1월 1일 국무회의를 열어 독자적으로 예산을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집행 기간도 차이가 있다. 잠정예산을 채택한 국가들은 집행 기간도 의회가 정한다. 미국은 대체로 1주일 단위로 잠정예산을 정한다. 영국은 통상 4개월 동안, 일본은 2, 3개월 동안 잠정예산 기간을 정한다. 반면 준예산을 채택한 한국과 독일은 집행기간에 기한이 없이 본예산이 의결돼 성립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독일은 재원 조달이 안 되면 전년 예산의 4분의 1까지 신용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용걸 재정부 2차관은 “예산 공백이 일어날 수 있는 미국 등 국가와의 시스템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준예산이 집행되면 일부 항목만 집행 가능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집행도 상당 부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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