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막힌 세종시-4대강… 여의도 묘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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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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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게임이론’으로 들여다본 2009 한국 정치

《17일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전격 점거한 직후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나라당 의원들도 점거를 준비하고 있었더군…. 우리가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국회 회의장 점거, 양보를 모르는 정면 대치, 결과 불복 및 탈당…. 우리 정치권의 고질(痼疾)들이다. 특히 국회 점거는 올 들어서만 세 번째 벌어지고 있다. 이번 예결위 점거 사태 이전에도 1월과 7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그때마다 거센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아랑곳없이 회의장 점거에 나선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움직이는 걸까.

이처럼 반복되는 정치권의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분석해주는 이론의 틀로 ‘게임이론’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게임이론은 1944년 미국의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과 경제학자 오스카어 모르겐슈테른이 개발한 이론이다. 최선의 성과를 가져올 행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이 이론은 경제학 군사학 정치학 등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 김영세 교수는 “정치인들도 좋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많은데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러겠느냐”며 “일반 상식으로는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정치권의 행동이 게임이론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 죄수딜레마와 국회 점거

여론 뭇매 불구 與野 점거 반복
서로 못믿는 죄수 딜레마에 빠져
신뢰회복이 선진정치 필수조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공범인 사건 용의자 A와 B가 서로 다른 취조실에서 격리된 채 심문을 받는 상황을 가정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두 용의자에겐 자백 여부에 따라 다음의 상황이 주어진다. 즉 △A와 B 모두 침묵할 경우는 둘 다 증거 불충분으로 각각 6개월형 △둘 중 한 명만 자백하면 자백한 용의자는 석방, 침묵한 용의자는 10년형 △A와 B 모두 자백할 경우는 각각 5년형이다. 이 경우 A와 B는 상대가 자백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모두 자백하는 길을 택한다.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김도태 교수는 “한국의 여야 양당이 끊임없이 회의장 점거를 시도하는 것도 ‘죄수의 딜레마’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당이 ‘신사협정’을 지켜 회의장을 점거하지 않으면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지만 어느 한쪽이 이를 어기고 회의장을 점거하면 상대방은 ‘실질적인 피해’를 당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 실제로 1월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의석수 170석이 넘는 한나라당은 쟁점 법안 처리에 실패했다. 7월에는 한나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미디어관계법을 단독 처리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김 교수는 “양당이 서로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치명적 피해를 막으려면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점거하는 쪽을 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게임이론을 적용하면 장기적으로 정치권의 회의장 점거는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1979년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반복한 결과 후반으로 갈수록 용의자들이 ‘침묵’을 택하는 확률이 높아졌다. 서로 불신하면 결국 같이 망한다는 학습효과 덕분이다. 연세대 김 교수는 “의회정치가 발전하고 학습효과가 쌓일수록 여야 간에 공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치킨게임과 친이 - 친박 세종시 갈등

양측 물러서지 않고 마주 달려
정면충돌 파국 피하려면 ‘배수진 카드’ 상대방에 공개해야


‘치킨게임(chicken game)’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게임이다. 도로의 양쪽에서 경쟁관계인 A와 B가 마주보며 차를 돌진하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핸들을 꺾은 사람은 겁쟁이로 몰리게 된다.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정면 대립하고 있는 여야 간의 힘겨루기는 물론이고 한나라당 내 주류 친이(친이명박)계와 비주류 친박(친박근혜)계 간의 팽팽한 대립 상황도 ‘치킨게임’으로 분석이 가능하다. 내년 1월 정부의 ‘수정안’이 나올 예정인 가운데 친이계와 친박계가 현 노선대로 달리다 충돌할 경우 한나라당은 큰 내홍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양 측이 ‘세종시’를 계기로 완전히 갈라설 수 있다고도 본다.

만약 친이계가 당이 쪼개질 것을 우려해 물러설 경우 친박계는 한나라당에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하고 지방선거 정국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반대로 친박계가 물러설 경우 친이계와 여권 주류는 당내 주도권을 강화하고 향후 정국 운용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경북대 경제학과 최정규 교수는 “‘치킨게임’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면 ‘비가역성의 원리(非可逆性의 原理)’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A가 자신의 손을 의자 뒤로 묶고 양발을 가속 페달에 묶는 모습을 공개하면 B는 A가 전진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회피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연세대 김 교수는 “‘비가역성의 원리’를 잘 활용하는 쪽이 ‘세종시게임’에서 이길 수는 있겠지만 이긴 쪽도 ‘강경’ 이미지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정치력에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양면게임과 농림위 4대강 예산

이견 많은 집단의 대표가 협상력 커
민주 내부 반발 딛고 與와 협상한 이낙연 위원장, 700억 예산 얻어내


‘양면게임(two level game)’은 주로 국제 협상에서 활용된다. 각 국가가 발휘하는 협상력의 크기는 내부 이견이 클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와 B국이 조약 체결을 위해 협상할 때 B국보다 A국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크다면 A국 지도자의 협상력이 높아진다. 내부 반대가 적은 B국은 조약 체결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에 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이낙연 위원장은 지난주 ‘양면게임’을 활용했다. 이 위원장은 농식품위에 배정된 4대강 예산 4066억 원의 처리를 놓고 정부와 협상을 벌였다. 이 위원장은 4066억 원 중 1000억 원을 4대강 사업과 무관한 둑 쌓기 예산으로 사용하자고 요구했고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난색을 표하다 200억 원을 제시했다. 실랑이 끝에 이들은 700억 원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정부는 당초 카드보다 500억 원을 더 쓴 반면 이 위원장은 목표치에서 300억 원만 낮췄다. 이 위원장이 속한 민주당에선 당시 4대강 예산 불가를 선언하는 등 이 위원장의 협상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가 컸다. 이 위원장은 “(협상이 성공해도) 나는 4대강 예산을 통과시켰다는 부담을 지게 된다”고 장 장관을 압박했다는 후문이다.

경북대 최 교수는 “내부 이견이 큰 쪽(이 위원장)이 ‘내 사정이 지금 이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내주기 어렵다’며 협상 상대방(정부)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가져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순차게임과 정동영 민주 복당

공천탈락자, 당선가능땐 탈당
당으로선 의석수 늘리기 위해 당선자 복당요구 거절 힘들어


‘순차게임(sequential move game)’은 여러 가지 선택을 앞에 둔 경기자(player)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한 뒤 가장 효율성이 높은 쪽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경기자의 선택이 끝나면 다음 경기자가 이를 이어받아 여러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골라 이어나가는 형식이다.

야권의 잠재적인 현안인 정동영 의원의 민주당 복당 문제를 ‘순차게임’으로 전망해 볼 수 있다. 순차게임에서 첫 번째 경기자는 정 의원이다. 순차게임에 따르면 정 의원의 탈당 및 복당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간주된다. 올 4월 공천 대상에서 배제된 정 의원에게 놓인 선택은 ‘탈당 출마’와 ‘불출마’의 두 가지였다. 당선 가능성만 높다면 정치인에게는 ‘탈당 출마’가 효용성이 높다. 공천 탈락에 승복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당직은 의원직과 비교할 때 실리가 없고 다음 공천권 보장은 말 그대로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실제로 ‘탈당 출마’를 택했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이어 ‘무소속 잔류’와 ‘복당’이라는 선택 중 후자를 택해 현재 당에 복당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 경기자인 민주당에는 ‘복당 불허’와 ‘복당 승인’이라는 선택이 남았다. 연세대 김 교수는 “민주당으로선 복당을 승인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당을 인정하면 의석수가 늘어나지만 복당을 불허하면 당권 유지에 관심이 큰 현 지도부를 제외하면 당 전체로선 얻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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