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안 처리 7년째 ‘습관성 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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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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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법정시한 못지켜… 심사 조차 못한것은 19년만에 처음
학자금 대출 내년 2월 시행 불투명… 장애아 재활치료 ‘올스톱’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지키지 못하면서 2003년 이후 7년 연속으로 처리시한을 넘기게 됐다. 이 때문에 헌법을 준수해야 할 국회가 헌법을 습관적으로 위반하는 ‘위헌국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헌법에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가 예산을 의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1일 현재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마쳐 국회 예산결산특위로 넘긴 상임위는 전체 16개 중 6개에 불과하다. 국회 예결특위가 법정 처리시한 전까지 심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은 1990년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다. 이에 따라 예산을 조기 집행해 경기 회복세를 이어가려는 정부 정책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주요 민생사업들이 줄줄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예산 처리 지연… 서민 ‘혹독한 겨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예산안 관련 정부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예산안이 조속히 처리되지 못하면 예산의 조기 집행이 지연돼 저소득층과 서민의 생활안정이 위협받게 되고 ‘따뜻한 겨울’을 나기가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국회가 예산 심사에 착수하지 못해 정부의 이런 우려는 현실이 돼가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107만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2010년 예산안에 8878억 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대학 등록기간인 내년 2월에 실시되지 못할 우려가 커졌다. 대출 준비에만 50일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장애아동 재활치료 지원사업도 개시 시점이 불투명해졌다. 지원 대상을 올해 1만8000명에서 내년 3만7000명으로 늘리고, 관련 예산도 305억 원에서 508억 원으로 늘려 사전 준비 업무가 크게 늘었지만 현재로선 ‘올 스톱’ 상태다. 예산이 확정되지 않으면 신규 대상자를 선정할 수 없다.

청년·노인·사회서비스 일자리와 희망근로 프로젝트 등 일자리 창출 사업 예산 3조5000억 원도 상당 기간 묶일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는 빠른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고용시장에는 한파(寒波)가 지속되는 만큼 일자리 사업을 1월 초부터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그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아동시설과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의 개보수 및 신·증축 사업 역시 예산 배정이 늦어지면서 착공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국고보조 사업으로 진행하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이 확정되지 않아 보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도 자금 수요가 몰리는 연초에 자금난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상당 기간 재정 공백 불가피”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 처리시한을 지켜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던 것은 올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조기에 집행하면서 ‘실탄’이 부족해진 데다 경기회복세를 이어가려면 내년에도 조기 집행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산안 심사가 늦춰지면서 관가에서는 “재정 조기집행은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가 예산을 확정하더라도 예산 배정에 7일, 사업공고와 계약체결 등 사전 준비에 15일, 자금 집행에 7일 등 시중에 돈이 풀리기까지 평균 30일이 걸리는 데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처럼 처음 실시하는 사업은 50일 이상 걸리기 때문.

재정부 관계자는 “두바이 쇼크 등 국제적 불안요인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와 환율 등 대외 변수도 심상치 않아 내년에도 조기집행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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