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전환돼도 한국 독자 작전능력 한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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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 ‘北 WMD 제거 등 美 주도’ 샤프 사령관 발언 파장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된 뒤에도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제거와 해병 강습상륙작전을 미군이 주도하기로 한미 양국이 최근 합의했다는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이 군 안팎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본보 10월 31일자 A1면 참조
“전시작전권 전환 후에도 北WMD 제거 미군이 주도”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령부의 최고지휘관이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특정 군사작전에 대한 양국의 합의 내용을 공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샤프 사령관의 발언은 한국군이 2012년 4월 17일부터 전작권을 행사해도 독자적인 대북 억지력 확보는 불가하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유사시 北핵기지 타격 美지원 없이는 불가능
美, 전략적 유연성 겨냥 전작권 전환계획 고수
“北급변사태 대비한 작계5029와 연관” 관측도


군 고위 소식통은 “한국이 예산 부족으로 국방개혁에 차질을 빚고 첨단전력 도입이 연기되는 만큼 전작권 전환을 계획대로 추진하되 2개의 핵심작전은 미군 지휘관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반도 유사시 한미 양국 군의 최우선 목표는 영변 핵시설과 핵무기 저장소, 생화학무기 생산·저장시설 등 북한 전역의 30여 곳으로 추정되는 WMD 시설을 최단시간에 파괴하는 것이다.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 및 평북 철산군 동창리를 비롯한 미사일 발사기지와 북한군 지휘부 등 주요 군사시설까지 포함한 즉각 타격 대상은 800여 개로 알려져 있다.

3중, 4중의 대공방어망과 감시레이더를 뚫고 북한의 WMD 시설을 정밀타격하려면 F-22 스텔스 전투기와 EA-18G 전자전(電子戰) 공격기, 조기경보기 등 첨단항공기 수백 대를 일시에 투입해야 한다. 사거리 1000km 이상의 크루즈미사일 수백 기의 족집게 타격 지원도 필수적이다. 이런 전력은 대부분 미군이 보유하고 있다.

또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남침할 경우 원산 등 북한 동·서해안을 통해 대규모 한미 연합 해병 강습상륙작전을 감행해 평양을 압박하는 작전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군에 평양이 고립되거나 함락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안겨줘 전쟁 수행 의지를 꺾을 수 있는 핵심 반격작전으로 북한 수뇌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한국군은 해병대 병력 2만5000여 명과 대형 상륙함(독도함)을 보유했지만 강습상륙작전에 필요한 공중 지원 전력이 크게 부족하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변함없어 한국군이 상륙작전을 지휘하기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강습상륙함과 CH-46 상륙헬기, AH-1W 공격헬기, AV-8 해리어 공격기 등 해상 및 공중 지원전력을 두루 갖춘 미군이 작전을 주도적으로 지휘하기로 양국이 결론을 내린 것이다.

두 핵심 작전을 미군 지휘관이 주도할 경우 전작권 전환 뒤에도 한국군의 전반적인 전쟁지휘 여건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군이 충분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전작권 전환을 연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군 안팎에서 나온다.

일각에선 미국이 한국의 상황을 알면서도 전작권 전환을 고수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해외로 이동 배치하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군 고위 관계자는 “몇 년 안에 주한미군은 중동 등 다른 지역에 2, 3년간 배치됐다가 한국으로 복귀하는 ‘세계기동군’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전작권을 한국군에 넘겨 자국 안보를 주도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게 미국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샤프 사령관의 발언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OPLAN) 5029’와 관련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작계 5029는 북한 정권의 통제력 상실 등으로 WMD가 외부 테러세력에 유출되거나 불순세력에 탈취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대응책이다. 군 소식통은 “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 WMD 확보 방안이 포함된 작계 5029 수립을 미국 측과 협의해 왔다”며 “작계 5029가 이미 완성됐거나 마무리 단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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