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쌀분배’ 투명성 원칙 불투명해지나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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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15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최근 남북관계 현안 및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15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최근 남북관계 현안 및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오늘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쌀지원한뒤 투명성 검증”… 통일부 원칙 유연적용 시사
靑“기준완화 이유 없다”… 정부내 미묘한 입장차이

북한이 16일 열리는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등을 통해 남한에 식량 지원 재개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 일각에서 인도적 지원의 전제 조건인 ‘분배의 투명성 확보’ 기준을 다소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원칙인 분배의 투명성 확보는 꼭 그 원칙이 먼저 지켜져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며 “식량을 지원한 뒤 북측과 협의 과정에서 확보될 수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에 지원한 식량이 북한의 취약계층에 지원되는 투명성을 확보하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아도 식량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당장 충분한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쌀을 지원하고 나중에 이 문제를 북한과 협의하는 방향으로 유연성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대북 인도적 지원의 3대 원칙을 강조해 왔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지난달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는 중단 없는 지원,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적 지원, 지원 물자의 분배 투명성 강화 등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말했다.

분배의 투명성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부의 공식 의견이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찔끔찔끔 대화 제스처를 한다고 해서 1년 반 이상 지켜온 원칙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이 원하는 ‘상응하는 호의’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대북 지원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고민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지원품의 투명한 분배를 보장할 방안을 먼저 마련하고 북측과 협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그동안 3원칙이 지켜져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취지였기 때문에 지원 이후 협의하겠다는 것은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북한에 완전한 분배 투명성을 요구할 수 없더라도 북한이 식량 지원을 요청해 올 경우 세계식량계획(WFP) 수준의 철저한 모니터링 방식을 요구한 뒤 협상을 통해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WFP는 평양과 지방 4곳에 현장사무소와 요원 60여 명을 배치해 지원된 식량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도록 확인하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WFP 등을 통한 50만 t 지원을 결정하기 전에 철저한 모니터링 조치를 북한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 장관은 이날 대북 인도적 식량 지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남북은 16일 개성공단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에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인도주의 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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