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투쟁… 협력… 결별… 주요 정치인 인물평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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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YS의 권유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1990년 3당 합당 과정에서 결별한 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이후 DJ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인 2007년 6월 “독재자의 딸”이라고 말했다가 정치권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김 위원장과는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만났다. 다음은 노 전 대통령의 인물평가 요약.》

김영삼 3당합당으로 6월항쟁 가치 통째로 망쳐놔
김대중 국보급 지도자… 지역분열 책임은 부인못해
박근혜 정수재단은 ‘장물’… 합법적 해결방법 못찾아
김정일 국정 꿰뚫고 유연… 대화가 될 수 있는 사람
이인제 대선후보 유력… 위기느낀 사람들 나를 선택

○ 김영삼 전 대통령

1987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할 때까지 YS의 업적은 DJ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6월 민주항쟁(1987년)의 가치를 통째로 망쳐놓고 민주세력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YS의 성공은 우리 사회가 기회주의를 배척할 힘을 잃어버리게 했다. 나의 정치인생은 YS와의 투쟁이었다. 20년 동안 YS가 만들어놓은 구도와 싸우게 됐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국보급 대접을 받을 만한 지도자다. 보통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독재와 싸웠고 사형선고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사람이라면 ‘건국의 아버지’ 같은 대우를 받는다. 물론 지역분열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정치를 해오면서 정수장학재단을 ‘장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돌려줘야 우리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고 역사가 바로잡힌다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왔다. 대통령이 된 뒤 돌려줄 방법을 백방으로 모색했지만 합법적인 방법이 없었다. 정수재단의 실질적 주인이 야당 대표로 있다 보니 잘못하면 야당 탄압이란 말이 나올 수도 있고 합법적인 수단도 마땅치 않았다. ‘과거사 정리라는 것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도 논리적으로 그 한계를 긋기가 어렵다. ‘판단이라도 하고 넘어가자, 하다못해 이름표라도 갈아 붙이자’ 하는 것이 역사 정리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도 저렇게 장물이 그냥 남아있고, 그 주인이 정권을 잡겠다고 하는 상황까지 용납하고 받아들이려니 무척 힘이 든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듣던 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국정 전반을 아주 소상하게 꿰고 있다는 데 놀랐다. 실무적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융통성이 있고, 유연하게 결정들을 해나갈 수 있어 ‘대화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북쪽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사람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단히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세 분 다 훌륭한 재목이다. 그 사람들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해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바람을 잘 일으키는 정치인이 꼭 바람직한 정치인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 이인제 의원

2002년 대선 때 노사모가 느낀 위기감은 이회창 씨의 존재보다는 이인제 씨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나 싶다. (YS의) 3당 합당에 따라가 도지사도 하고,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불복도 한 사람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겠다고 하니까 소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겠는가. 그 위기감 위에서 내가 대통령까지 오게 된 것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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