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北에서 살아계셨다니…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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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날 아버지 전기봉 씨의 사진을 들고 있는 전향자 씨. 김재명 기자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날 아버지 전기봉 씨의 사진을 들고 있는 전향자 씨. 김재명 기자
■ 北측 최고령 상봉 2명 기다리는 남쪽 가족
“감정 격해 쓰러질까 걱정… 왜 北에 갔나 물어볼참”

“연로한 아버님이 상봉장에서 저를 보고 감정이 격해져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부터 앞섭니다.”

26일부터 열리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의 가족이 남한의 가족을 찾는 상봉자 100명에 포함된 전향자 씨(62·서울 서초구 반포본동)는 아버지를 만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사망한 줄로 알았던 아버지 전기봉 씨(85)는 북측 상봉단의 최고령자 중 한 명이다.

아버지와 헤어진 것은 전 씨가 2세 때인 1950년. 당시 대학생이던 아버지는 전쟁 통에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다. 너무 어린 나이에 헤어진 아버지라 아버지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조차 없지만 그리움마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충남 서천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장항선 기차를 타고 돌아올 것 같아 아버지가 못 견디게 보고 싶은 날이면 서천역으로 나가 서울발 열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지요.”

세월은 간절한 기다림도 체념으로 바꿔 놨다. 수십 년 동안 편지 한 장 없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전국적으로 이산가족 찾기가 한창일 때에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 씨는 상봉장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당시 대학까지 다닌 엘리트였던 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북으로 가게 됐는지 여쭤볼 참이다.

북측 상봉단의 또 다른 최고령자 박춘식 씨(85)와의 상봉을 앞둔 아들 박이학 씨(64·경기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는 요즘 ‘아버지’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 이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1950년 회사원이던 박 씨의 아버지는 강원도 동해에서 종적을 감췄다. 전쟁 통에 군대에 소집된 것이 아닐까 막연히 짐작하고 있지만 정확한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참전했다가 전사했다면 유골이라도 찾으려고 국방부에서 DNA 검사까지 받으며 아버지의 소식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 씨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금까지 20년 넘게 지내왔다. 기일을 알 길이 없어 아버지의 호적상 생일에 맞춰 제사상을 차렸다.

이번 상봉에서 형 윤한규 씨(77)를 만나게 되는 윤항동 씨(66·강원 원주시 학성동)도 “죽은 줄만 알았던 형님이 살아있다니 꿈만 같다”며 상봉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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