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7%에 맞춘 ‘국방개혁 2020’ 예견된 좌초 위기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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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정부 ‘자주군대론’ 강조
2005년 현실 무시한 채 책정
금융위기로 벌써 2조원 차질
“원점서 재검토 불가피”여론

내년도 국방예산이 국방부가 요청한 수준보다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병력 감축과 부대 개편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군 고위 소식통은 9일 “지금까지 알려진 정부 예산안으로는 국방개혁의 요체인 병력 감축과 부대 개편을 도저히 계획대로 추진할 수 없다”며 “국방개혁 목표 연도도 2020년보다 늦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 착수한 국방개혁이 불과 4년 만에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 첫 단추부터 잘못

노무현 정부가 2005년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할 때부터 좌초 위기는 충분히 예견됐다. 당시 국방부는 2006∼2010년 연평균 국방예산 증가율을 9.9%로 책정했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연평균 국방예산 증가율(4.7%)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군 당국은 크게 늘어난 예산으로 첨단전력을 도입하고 부대를 개편해 전체 병력을 당시 68만여 명에서 2020년까지 50만 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군 안팎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국방부는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7.1%로 예상돼 예산 조달에는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다. 군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의 ‘자주군대론’ 때문에 국방개혁 수립 과정에서 경제적 변수는 거의 무시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국방개혁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예산난이 가중되면서 궤도를 크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GDP 성장률은 지난해 말 ―5%까지 떨어진 뒤 최근 회복세이지만 아직 마이너스 상태다.

2006년부터 2008년 말까지 누적된 국방예산 차질 규모가 2조 원을 초과하는 등 개혁이 파행 조짐을 보이자 국방부는 올해 6월 국방개혁 기본계획 수정안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수정안에서 2020년까지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을 8%에서 7.6%로 줄이는 등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보완했다며 내년 국방예산으로 올해보다 7.9% 늘어난 30조7817억 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예산부처는 국방개혁 수정안이 여전히 경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보고, 내년 예산 증가율을 절반인 3.8% 선에서 묶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에서 국방예산의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요소를 심각하게 보고 있어 내년 이후로도 국방부 기대만큼 예산이 증액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전시작전권 전환도 차질 빚을수도

국방부는 난감해하고 있다. 내년도 국방예산 증가율이 3.8% 선에서 결정되면 당초 계획보다 1조1000억 원이 모자라고 2006년 이후 국방예산 차질 누적 규모도 3조 원 이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 삭감이 인건비 등 고정비용보다 방위력 개선비와 전력 유지비에서 이뤄질 경우 무기 도입과 노후장비 교체 등 전력 증강 계획들이 줄줄이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선(先) 전력 증강, 후(後) 병력 감축’이라는 국방개혁의 대원칙이 흔들리면서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개혁 수정안에서 올해부터 2015년까지 병력감축 규모를 9만5000명에서 5만6000명으로 줄였는데, 내년 예산증가율까지 크게 축소되면 더는 부대 개편과 병력 감축 작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개혁의 근본적 수술이 추진될 경우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군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된 전작권 전환의 재검토를 반대했다. 한미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번복해선 안 된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전작권 전환이 늦춰지면 막대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국방개혁도 물 건너갈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방개혁이 재검토되면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전환 연기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각에선 군이 실현하기 힘든 국방개혁안을 고수하며 과도한 예산 증액을 요구해서는 국방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군 수뇌부가 이제라도 국방개혁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국가 경제를 고려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동아닷컴 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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