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金시대 넘어… 좌우-東西갈등 넘어… 화해의 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 정치원로-전문가 10인 ‘국민통합’ 제언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
행정구역-선거제도 개편해야… 인재등용 균형 필요
○이념-계층간 갈등 치유
DJ-YS 화해했듯이 열린 보수-건전 진보 손잡아야
○산업-민주화 세력 화해
상대의 공 인정하고 포용… 새 비전 제시 노력할 때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한국 사회가 고질적인 갈등의 벽을 허물고 화합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반세기 가까이 애증으로 얽혀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DJ 서거 직전 극적으로 화해한 것을 계기로 우선 영·호남 간 동서화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과도한 계층, 이념 대립을 종식시키고 상생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할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여야는 이에 공감하고 각각 당 차원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미디어관계법 처리 이후 극한 대치 중인 정치권이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정치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봤다.》
○ 동서화합 물꼬 트나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영삼(YS), 김대중(DJ) 후보는 야권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민주화 진영은 갈라졌다. 양 진영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영·호남 간 지역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지역감정은 한국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망국병(亡國病)’”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기반을 다지는 정치적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활용하는 구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DJ 서거로 3김 시대가 막을 내린 만큼 정치권도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는 영원히 청산해야 한다”며 “인재 등용과 지역 개발에 균형을 이루는 게 동서화합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인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YS, DJ의 반목이 영·호남 갈등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며 “민주화 추진 세력들이 뭉쳐 지역갈등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망국적 지역감정을 지역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강소국연방제’와 같은 국가 개조로 지역 간 감정적 대립 관계를 건설적 관계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행정구역을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나라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인 정의화 의원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 시군을 하나로 묶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활권이 하나가 되면 갈등도 사라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영·호남 간 인적 교류도 중요하지만 탕평인사가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핵심”이라며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것도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DJ 측근은 지역화합 차원에서 YS에게 이번 DJ 장례의 공동장의위원장을 맡기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지만 YS 측은 건강상의 이유로 부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이념 계층 간 갈등도 봉합해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는 동안 1980년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국정 주도세력으로 부상하자 좌우 이념 논란이 거세졌다. 세계 각국은 실용의 기치를 내걸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지만 한국은 이념 갈등의 덫에 걸려 반목과 대립을 거듭해 왔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제 이념을 논할 단계는 지났다. 열린 보수와 건전한 진보는 맥을 함께한다”며 “정책 판단의 기준을 이념이 아닌 국가와 국민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은 “DJ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사회안전망을 철저하게 구축해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며 “제도적 뒷받침과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계층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
DJ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산업화를 이끌어온 세력에 날을 세운 민주화 세력의 대표적 인물이다. DJ 정부 출범 이후 산업화 세력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하지만 DJ 서거를 계기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갈등을 접고 진정한 화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아직도 그런 것을 따지고 있느냐”며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는 불필요한 구분은 이제 역사 속에 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는 결국 사회 통합의 문제로 제도적으로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양측이 상대의 공(功)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대북정책 갈등도 극복해야
대북정책을 놓고 남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남남갈등’도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DJ의 ‘햇볕정책’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돕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평을 듣는다.
민주당 한광옥 상임고문은 “이명박 정부가 과거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관된 대북정책이 있어야 북한도 남한 정부를 신뢰하고 대남 유화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충조 의원은 “DJ가 가장 안타까워한 것이 ‘대북 퍼주기’ 논란이었다”며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일관되게 지원하고 남북정상선언을 실행해 나가면 남북관계는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박인휘 교수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대북정책을 추진해온 이명박 정부가 DJ 서거를 계기로 DJ의 햇볕정책으로 전면 회귀하려 한다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합리적인 진보 인사를 대북정책 책임자로 기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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