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통큰 결단’ 생색 내며 李대통령에 ‘8·15 화답’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유 씨에게 쏠린 관심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가 13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한 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앉아 있는 모습을 취재진이 경쟁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파주=변영욱 기자
유 씨에게 쏠린 관심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 씨가 13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한 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앉아 있는 모습을 취재진이 경쟁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파주=변영욱 기자
■ 억류 유씨 석방 배경과 남북관계 전망
국제사회의 봉쇄 심화되자 대화재개로 전술 바꾼듯
김정일, 현정은 회장 만나 ‘유화 메시지’ 전달 가능성


북한이 8월 들어 미국인과 한국인 억류자들을 잇달아 석방하며 대외관계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올 상반기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 등 ‘벼랑 끝 전술’을 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고립 상태에 빠지자 대화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위기관리 전술’ 쪽으로 방향을 수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44) 석방을 통해 남측의 대북 지원 재개를 기대하는 모습이지만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며 신중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 북한이 유 씨를 석방한 세 가지 배경
북한이 대외정책 전환을 꾀하게 된 데는 국제사회가 올 상반기 북한의 군사적 시위에도 굴하지 않고 일관된 목소리로 대북 제재 기조를 유지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억류자 석방은 북한이 자초한 국제사회의 봉쇄와 제재 국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돌파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또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악화된 북-미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방북해 유 씨 석방을 촉구한 만큼 미국의 환심을 사려는 북한으로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을 세워 간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부가 유 씨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키면서도 먼저 자세를 낮추지 않는 등 원칙을 확고히 지키는 상황에서 북한도 이 문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대외적 정세가 북한 내부 정책 결정의 변화를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3남 김정운을 지명한 이후 지도부가 대외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것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 북한은 남한에 어떤 메시지 보낼까
김 위원장은 방북 중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통해 유 씨 석방과는 별도로 대남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우회적인 유감 표시와 함께 개성공단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위원장의 태도가 전향적일 경우 북한은 조만간 억류된 ‘800연안호’ 선원들도 석방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대규모 조문단을 보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간첩 혐의가 있다고 보는 유 씨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석방한 것을 ‘통 큰’ 결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서 “남한에 대한 추가 유화 메시지를 보내기보다는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남측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남측의 태도를 지켜보려 할 것”이라고 달리 예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 등을 지켜보며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양 교수는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도 ‘원하는 대로 유 씨까지 석방했으니 이제 우리 요구에 답을 할 차례’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남북관계 정상화까진 갈 길 멀어
유 씨 석방은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가 될 수 있지만 실제 개선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북한이 연안호 선원들을 마저 석방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등 가장 손쉬워 보이는 관계개선 방안도 남북한 당국의 실무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 지역에서 한국인 신변안전 제도화 방안 마련은 필수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관광 재개와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는 대규모 개발지원과 같은 본격적인 대북 지원이 가능하려면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여 등 핵 폐기를 위한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서재진 원장은 “미국 정부는 아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한의 태도에 큰 변화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정부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의 유 씨 석방에 대해 정부가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어떤 화답을 하는지에 향후 남북관계의 향배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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