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稅감면 줄이되 서민 稅혜택은 현행유지

  • 입력 2009년 7월 13일 02시 59분


여권, 세수확보 3대원칙 마련

증여-상속세 감면등 유예
의료-교육비 공제는 늘듯

정부와 한나라당은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을 줄이는 대신 서민들에 대한 세제혜택은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증여세와 상속세 감면은 유예되고 대기업 투자세액공제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 의료비나 교육비 공제 등은 더 늘리는 쪽으로 세제개편의 가닥이 잡혔다.

○ 서민증세 불식 3대원칙 전달

여권 관계자는 12일 “최근 정부에 세수(稅收) 확보와 관련한 3대원칙을 전달하고 이에 맞춰 8월 말까지 구체 방안을 도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3대원칙은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조세혜택 축소 △서민·자영업자 세제혜택 현행 유지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 고수 등이다. 이 관계자는 “경제위기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서민 증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세제개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내년 재정 여건을 감안해 담세(擔稅) 여력이 있는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해선 조세특례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의장도 1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증여세와 상속세율을 낮추는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급하게 낮출 필요가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기업이 투자할 때 세금을 깎아주는 임시투자세액 공제도 법인세가 올해 일부 인하된 만큼 공제율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넓은 세원’과 관련해선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무조사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의사 변호사 등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거나 대상을 그대로 두되 심도 깊게 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 거론되는 성형수술이나 보약 구입 등에 대한 소득공제 폐지는 검토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자영업자와 관련해선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하되 의료비나 교육비, 다자녀가구 공제는 늘릴 방침이다.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의 경우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소득세(15.4%)를 물기 때문에 이중과세라는 지적이 있는 점을 감안해 이자소득세 만큼 빼주는 대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또 과세기준을 보증금 3억 원 초과로 정해 사실상 지방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 재정건전성 등 불씨 잠복

여권이 세제개편 원칙을 마련했지만 정작 재정건전성과 관련해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당정 논의 과정에 논란의 불씨가 잠복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장 소득세 법인세 인하로 올해 10조 원의 세수가 줄어든 데 이어 내년에는 13조 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엔 나랏빚이 400조 원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내년으로 예정된 소득·법인세 추가 인하 계획을 늦춰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선 섣불리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쪽이다. 여권 관계자는 “소득·법인세 인하를 유예하게 되면 기업을 설득할 명분이 없어진다”며 “나라 곳간이 비는 것도 문제지만 정책신뢰성도 문제”라고 말했다. 술이나 담배에 붙는 세금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친(親)서민 정책’과 ‘중도 강화론’ 때문에 없던 일로 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재정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상황에서 정부 초기에 추진했던 조세운용계획을 계속 끌고 가기 어렵다”며 “각국이 조세 감면을 철회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금융위기 이전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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