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으로 해외공관 격려금 ‘펑펑’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18대 국회의원 작년 6월~올 2월 해외출장 업무추진비 따져보니
대사-공관직원들에 ‘촌지’ 주고 비용 처리
선물-연회비용도 어디에 얼마 썼는지 불투명

18대 국회의원이 해외출장 때 국회사무처에서 받은 업무추진비(2억2934만 원) 가운데 3분의 1가량인 7462만 원을 출장비 지급 규정에도 없는 각국 대사와 총영사 등 해외공관에 대한 격려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6월 8일부터 올 2월 7일까지 이뤄진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35건의 업무추진비 사용 명세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밝혀졌다. 국회의원 해외출장 업무추진비의 구체적인 사용 명세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의원이 현지 공관에 건넨 격려금은 일정 조율과 길 안내를 하는 데 대한 답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 같은 격려금은 국가 예산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나랏돈으로 촌지(寸志)를 준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업무추진비에 대한 더욱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격려금 집행 명세 검증도 어려워

‘A, B, C대사 각 1200달러, D총영사 700달러, E입법관 500달러….’ 문희상 국회부의장이 지난해 8월 하순 동료의원 4명과 유럽 3개국을 다녀온 뒤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업무추진비 사용 명세다. 이들은 업무추진비 1만6400달러 중 격려금으로 모두 5500달러를 사용했다. 3개국을 방문할 때마다 현지 대사에게 1200달러씩 줬다. 이윤성 국회부의장도 비슷한 시기 중앙아시아에 들러 대사 등에게 격려금 2000달러를 건넸다.

조사 대상 기간에 이뤄진 35건의 해외출장 업무추진비는 모두 2억2934만 원(약 18만4721달러)으로 항공비와 체재비를 포함한 전체 여행경비는 14억8035만 원이었다. 업무추진비의 유형별 사용 명세는 오찬과 만찬비용 등 연회비(宴會費)가 6만2948달러, 해외공관 등 격려금이 6만102달러였다. 통역비(1만2748달러)와 선물비(1만2419달러) 차량 임차료(1만1415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사용 명세에는 해외공관 격려금 가운데 1만7212달러가 대사에게, 9363달러는 대사관에, 8854달러는 대사관 직원에게 건네진 것으로 적혀 있다. 이 중 대사관 앞으로 전달한 돈의 구체적인 용도는 분명하지가 않다. 무역관장과 한인회장에게 건네진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연회비와 통역비, 선물비와 달리 격려금은 국회의 출장비 지급 규정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영수증이 없다 보니 이 돈이 실제로 격려금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통역비는 통역 도우미에게 서명을 받을 수 있지만 격려금을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서명을 받겠느냐”면서 “국회의원이 적어낸 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격려금 항목을 국회의원이 허위로 작성하거나 부풀려 적어내도 찾아낼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 연회비와 선물비도 허점투성이

지난해 미국 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들의 업무추진비 사용 명세에는 현지 정치인과 경제인 등과의 오찬과 만찬 일정은 전혀 없었다. 현지 공관이나 교민과의 격려 오찬과 만찬이 전부였다. 해외출장 업무추진비 가운데 연회비는 격려금보다 다소 많지만 이마저도 외교 활동보다는 교민이나 공관 등에 사용되고 있다. 선물비 사용 명세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선물 구입비로 2000달러를 사용했다면 그 비용에 대한 영수증만 제출할 뿐 그 선물을 누구에게 줬는지, 어떤 선물인지 등에 대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판례도 무시하는 국회

지난해 8월 중하순 동남아에 들른 여야 국회의원 4명은 오전에 골프장에서 3시간을 보내고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골프장에서 돈을 얼마나, 어디에 사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의 해외출장 관련 업무추진비의 대략적인 항목만 공개할 뿐 구체적인 용처가 파악 가능한 영수증 등 증빙서류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대법원은 참여연대의 서울시장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증빙서류 등을 공개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은 “판례에 따라 업무추진비를 공무원이 사용했다면 영수증에 있는 상호까지 공개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