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당국, 골대로 안가고 수비수 피하기에만 급급”

  • 입력 2009년 6월 25일 02시 56분


당초 ‘자율-경쟁’원칙 말뿐 공교육 정상화 방향 잃어
여의도硏 ‘내신 무력화’ 방안, 공교육 더 악화시킬 우려

자율과 경쟁에 의한 공교육 강화를 강조하던 이명박 교육정책이 좌표를 잃고 표류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교육계 인사는 “교육 당국이 골대를 향해 공을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수비수를 피하기에 급급한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민심 향방, 사교육 지표, 단기 실적에 따라 널을 뛴다는 말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24일 배포한 사교육 대책 토론회 보도자료의 제목은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사교육이 준다’라고 20년째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어느 세월에?”다. 연구소는 보도자료에서 “사교육비 줄이기는 교육 당국이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그동안 교육 당국은 공교육 내실화를 강조했지만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주장했다.

교육 관료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을 바탕으로 나온 대책이 결국 내신 무력화다. 공교육을 정상화해 사교육을 줄이자고 외쳐 온 교육과학기술부 직원들은 당장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사교육 절감을 강조하면서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사교육 방안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자괴감까지 느끼는 분위기다.

특수목적고 입시가 사교육 주범이라는 것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계속된 지적이다. 해법은 달랐다. 이명박 정부는 자율형사립고 등 다양한 고교를 만들어 특목고에 대한 이상 수요를 줄인다는 거시적인 원칙을 세웠다. 교과부는 외국어고는 변형된 지필고사를 금지하고 영어 듣기평가를 공동출제하며, 과학고는 입학사정관 전형과 학교장 추천제를 도입한다는 미시적인 대책을 덧붙였다. 중학교 내신을 반영할 때 수학과 과학에 불합리한 가중치를 두는 것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연구소가 내놓은 방안은 아예 중학교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내신이 사교육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공교육 붕괴에 대한 우려나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공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신 평가 방식 변경에 대한 연구소의 논리도 간단하다.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 간 성적 경쟁이 강화돼 대입 사교육이 팽창한다는 것. 이에 대해 교육계 인사들은 “경쟁을 통한 실력 강화를 강조하던 정부의 교육 기조는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리라면 국제중이나 자율고 입시에 도입한 추첨제를 대입에도 적용할 판이다. ‘뽑기를 잘하는 법’ 같은 사교육이 일부 생길지언정 사교육 시장의 전체 파이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정 협의 결과 시도 조례로 정하기로 했던 학원 심야 교습 시간에 대해 다시 규제안을 만들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학원 옥죄기’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 많다. 한 학원장은 “사교육 대책이 나올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커져 왔다”며 “통계나 민심에 기댄 입시 정책은 공교육과 사교육 모두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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