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한 그날, 긴박했던 美 NSC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9분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인 25일 오전 2시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돌아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속하게 대북 규탄성명을 냈다. 이어 그날 오후 백악관 웨스트 윙 지하벙커 상황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바로 미국 국가안보와 관련한 최고의 정책결정기구이자 부처 간 정책조율기구인 국가안보회의(NSC)였다.
백악관 NSC 상황실은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만든 이래 미국 국내 안보는 물론 전 세계 주요 현안과 관련한 숱한 결정이 내려진 곳이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엔의 깃발 아래 미군이 참전하는 결정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안보장관들이 속속 입장했고 마이클 멀린 합동참모본부 의장도 굳은 표정으로 상황실로 들어섰다.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도 대통령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모니터 화상으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의 핵실험과 이후 상황에 대한 보고가 있은 뒤 2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를 이어갔다.
백악관은 이날 회의에서 군과 정보당국이 내놓은 정보를 통해 북한의 핵 무기화와 개발한 핵무기를 미사일을 통해 운반할 시스템이 아직 초보단계에 있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 국방장관과 군 참모들은 북한의 핵개발 자체보다는 핵 기술의 해외 이전을 막는 데 단기적인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클린턴 장관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러시아와 중국이 보인 즉각적이고 강력한 비판의 태도를 평가한 뒤 현 단계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외교적 압력을 강화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국제 여론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점도 북한에 대한 응징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한마디 이상씩 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달라진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이 존스 보좌관의 설명이었다. 그는 27일 애틀랜틱카운슬 주최 초청강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회의에서 침묵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토론이 시작되면 단 한 사람도 대통령의 질문을 피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여러 부처의 시각과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며 “회의 뒤 상황실을 나가는 사람들은 ‘내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NSC 내에서 한반도 관련 주요 결정은 존스 보좌관, 토머스 도닐런 부보좌관 외에 제프리 베이더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수 테리(한국명 김수미) 한국담당 보좌관 등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 중 한 명인 게리 세이모어 NSC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 조정관도 북핵이나 미사일 관련 주요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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