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판 타워팰리스의 등장

  • 입력 2009년 4월 23일 16시 13분


북한에도 '타워팰리스'라고 불릴 만한 초호화아파트가 등장했다. 돈을 번 부유층의 소비욕구는 북한이라고 예외가 아닌 것이다. 한쪽에선 여전히 초목을 캐먹는 사람들이 많으며 아사자도 발생하고 있다. 만민평등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부익부빈익빈'의 현주소를 진단해본다.

●'북한판 타워팰리스'

1991년 북한 최초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된 함경북도 나진-선봉 시에는 지난해 4만 달러짜리 아파트가 등장했다. 지방 당국이 땅을 제공하고 중국 업체가 건설한 뒤 분양수익을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건설됐다. 최근 들어 거의 모든 주택들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북한에서 2만 달러 이상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5층 10가구짜리 이 아파트의 가구별 면적은 300㎡. 평양의 초호화 아파트도 200㎡이 넘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대형이다. 여기에 중국 회사가 나진-선봉에서 직접 생산하는 전기를 단독 공급받아 정전이 되는 일은 없으며, 냉수는 물론 온수까지 콸콸 나온다. 양변기와 욕조에 소파 커튼까지 갖추었다. 북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편의시설을 갖춘 셈이다. 완공 뒤 호화로움에 놀란 북한 지방간부들이 "보는 눈들이 많은데 다시는 이런 아파트가 건설되면 안 되겠다"고 말할 정도라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이 아파트는 인기가 높아서 분양가는 4만 달러였지만 웃돈을 얹어주고 4만5000달러에 산 사람도 있었다는 것. 북한에서 부유층은 주로 달러로 거래한다. 1달러는 북한 돈으로 3700원 정도여서 큰 거래일 경우 부피가 많은 데다 북한 돈은 계속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급아파트들은 대개 권력 서열 순으로 차례지지만, 이 아파트는 워낙 비싸 합법적으로 돈을 벌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외화를 버는 기업사장들이 주로 입주했다고 한다. 이곳에 입주한 한 사장은 "어차피 우린 감시받고 사는데 내일 죽더라도 이런 아파트에 한번 살다 죽겠다"고 말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북한엔 수십만 달러를 갖고 있는 부유층이 많지만 눈치를 보며 살다보니 그들을 겨냥한 호화주택이 건설되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주요 지방 대도시라고 해야 단층집을 사 1만~2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경우가 고급아파트에 속한다. 면적은 120㎡ 내외지만 상당히 좋은 아파트다. 평양 부유층은 남의 눈에 띄는 집보다 다른 방식으로 소비욕을 충족한다. 지난해 6월 평양에 문을 연 남한 찜닭 프랜차이즈 '맛대로촌닭'은 줄을 설 정도로 인기다. 대표메뉴인 '평양칠향계'는 10달러 정도로 북한 위관급 장교 1년 치 월급에 해당한다.

●'북한판 타워팰리스'는 남한에선 40억~50억 원대 아파트

북한의 생활실태를 남한과 비교해 분석해보자. 북한에서 옥수수밥이나마 매일 먹으면 평균 수준이다. 1명이 1년 평균 옥수수 180㎏을 소비한다고 볼 때 4인 가정은 720㎏ 정도가 필요하다. 현재 북한의 옥수수 최고가격은 1kg에 800원이다. 여기에 북한 원-달러 환율 3700원을 적용하면 4인 가족은 1년에 식량구입에만 156달러를 써야 한다. 탈북자 등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선 평균 가계지출의 절반 정도가 식량 구입에 나가고 나머지는 땔감 부식물 생필품 등에 지출된다. 이를 통해 유추하면 북한의 4인 평균 가정은 1년에 300달러정도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의 추정과 비슷한 수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한 4인 가족 월평균지출은 약 319만 원. 연간 약 3830만 원(2만8500달러)쯤 된다. 북한 4인 가족 평균지출을 넉넉히 잡아 350달러로 봐도 남한이 액수로 80배 이상 많다. 북한에서 4만 달러 아파트에 웃돈 5000달러를 얹어주었다는 것은 액수가 80배 이상 높은 남한 소득수준으로 볼 때 320만 달러(약 43억 원)짜리 아파트에 40만 달러(5억4000만 원)를 더 얹어 48억 원에 산 것 만큼 체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유추해보면 1만~2만 달러에 거래되는 평양 중심부 아파트는 한국으로 보면 80만~160만 달러, 즉 대략 10억~20억 원 구간에 해당한다. 현재 보통 2000~3000달러에 거래되는 북한 지방 대도시의 중심부 아파트들은 한국으로 치면 2억~3억 원짜리인 셈이다. 반면 북한의 농촌에는 수십 달러에도 팔리지 않는 농가들이 많다. 거주환경만 따져 봐도 북한은 지금 50억 원짜리 초호화 아파트에서 사는 부유층과 몇백만 원짜리 집에서 사는 빈민 계층이 공존하는 남한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회가 된 셈이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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