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노무현과 신경민

  • 입력 2009년 4월 21일 17시 23분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던 시절, 가급적 지면에 그를 언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글줄이나 쓰고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노무현을 물어뜯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를 무시한 건 나였다. 노무현 정권 초기부터 나는 그들이 ‘유능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하며, 단지 돈을 먹을 기회가 없었던 비주류 운동권 집단’이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런 ‘깜이 안 되는’ 정권을 상대로 지면을 어지럽힌다는 것 자체가 신문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나라가 흔들리던 때 그가 ‘임대 주택’이 아닌 ‘봉하 저택’에서 득의만면하여 관광객들을 향해 되지도 않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 “아직도 저렇게 철이 안 들었나…” 하고 안타까워했다.

전직 대통령 구속수사는 말아야

그 생각은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검찰의 수사를 받는 노무현 씨 내외가 쏟아낸 말과 글을 보고 들으면서 이번에는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한마디로 가증스럽다. 특히 ‘노짱’이라 불리던 사내가 범죄 혐의를 아내 탓으로 돌리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 데는 “저 인간 도대체 왜 저래” 하는 분노가 솟구쳤다. 앞으로 무슨 범죄 혐의가 추가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구속수사에는 반대한다. ‘국격(國格)’의 문제인 데다 검찰이 다시는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인 노무현은 위선이 발가벗겨졌고, 가장(家長) 노무현은 파탄 났으며, 노무현 일가(一家)는 폐족(廢族)이나 다름없게 됐다. 현실적으로도 그는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와 증거를 내놓든 세 치 혀로 법망을 교묘히 피하려 들 것이니 국론만 분열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이명박 정권 음모론’과 ‘노무현 동정론’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물론 노무현은 깨끗이 죄상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한 뒤 영원히 정치판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검찰이 ‘천문학적 비자금’도 아닌 ‘회갑 축하금’ 정도를 까발리며 전직 대통령을 압박하는 행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검객(劍客)은 칼잡이에 그쳐야지 정치를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전 정권 실세들의 얼굴 위로 현 정권 실세들의 얼굴이 겹치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찰 출신 원로 한 분은 “전직 대통령 구속기소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영장 발부를 놓고 법원도 처지가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MBC 앵커교체 코미디 아닌가

MBC에 대해서도 나는 노 정권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공영과 상업방송 사이에서 정체성이 불분명한 이 방송은 현재 구성원들의 정치적 소신을 구현하는 데 치우친 사실상의 ‘노영(勞營) 방송’이다. 그렇더라도 신경민 앵커의 교체는 유감이다. 어떤 식으로든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같은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청취자이자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앵커 신경민의 언변과 비판정신을 평가한다. 그를 아는 기자들은 그가 현장 기자 시절 특정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니었다고 증언한다.

그의 교체 사유가 된 ‘클로징 멘트’에 대해서는 “MBC가 ‘앵커 신경민의 개인 방송’은 아니지 않느냐”는 견해에도 일리가 있지만, ‘촛불 시위’ 등 몇몇 사안을 제외하고는 언론의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인상을 받진 않았다. MBC의 콘텐츠에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시청률과 광고가 떨어진다면 이는 전적으로 일선 기자들과 방송 최종책임자인 사장의 잘못이지 앵커의 책임이 아니다. 편향성의 문제는 오히려 김미화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 더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신경민은 물러났고, 김미화는 살아남았다. 정말 코미디다 코미디.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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