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 차장?…‘王차관’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취임 두달

  • 입력 2009년 3월 21일 02시 58분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1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취임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1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취임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
물위에선 각종 국정현안 조용하게 처리

물밑에선 쉴새없는 전화로 ‘정중동’ 조정

“박 차관은 마치 ‘백조’처럼 움직이고 있다.”

1월 20일 취임한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의 두 달을 지켜본 한 총리실 직원의 소감이다.

물 위로는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수면 밑에서는 분주히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총리실 내에서의 그의 위상은 첫날부터 달랐다.

박 차장이 취임한 날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도 어수선했다.

박 차장은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자마자 취임식도 하기 전에 긴급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런데 박 차장이 임명장을 받느라 대책회의가 늦어졌다. 그러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실세 차관’인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총리실 직원들에게 “일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쳤다.

한 총리실 직원은 “‘실세 차관’이 온다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다른 부처 차관에게 혼이 나 더 주눅이 들었고 새삼 ‘실세’가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차관급’인 박 차장의 취임식에 기자들이 대거 몰려온 것이나, ‘일개’ 차관이 취임사에서 “청와대는 두뇌고 총리실은 심장”이라며 청와대와 대통령을 언급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청사 안팎에서는 그의 ‘힘’을 보여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 차장이 주재한 회의에 부장검사가 아닌 평검사가 오자 박 차장이 그 검사를 돌려보내고 회의 자체를 취소했다는 일화도 있다.

한 부처의 국장은 “부처 간 회의에서 중심이 박 차장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차장은 요즘 자신에 대한 시선을 의식한 듯 몸을 낮추고 업무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무차장의 하루와 한 주는 회의로 시작해서 회의로 끝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의 연속이다. 월요일 열리는 총리실 간부회의부터 국가정책조정회의, 차관회의 등 정례회의와 비정기적인 고위당정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

주요 국정 현안을 두루 챙기는 차관회의는 국무총리실장(장관)이 주재하지만 실무 준비는 국무차장실이 맡는다.

자신이 담당하는 고용사회안전망 태스크포스(TF), 쌀 직불금 TF 등을 직접 주재하고 총리의 지방 방문도 수행한다.

최근 총리실의 업무 조정으로 이명박 정부의 역점 사업인 ‘4대 강 살리기’도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유달리 통화량이 많다. 어떤 자리에서든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바쁘다. 한 공무원은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은 직책이어서 필요한 외부 인사와는 전화로 접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차장의 외부 활동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회의에서 그를 대한 각 부처 공무원들은 “박 차장이 ‘다양한 정보’가 많은 것 같다”고 평가한다. 공식 보고 외에도 정부 밖에서 현안에 관한 많은 정보를 받고 있다는 것.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청와대 내부 동향도 시시각각 그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취임 두 달을 앞두고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원래 정치인이 아니라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을 하면서 온갖 정책을 다뤄본 ‘정책통’”이라며 “청와대보다 총리실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날 박 차장은 정치 분야는 피하고 주로 정책에 대해 얘기했다. 각종 회의가 너무 많아서 통합하고 단순화하겠다고 말했고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하는 총리실이 자기 원칙과 기준이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심스러운 처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한마디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파워가 느껴진다는 게 총리실 직원들의 얘기다. 박 차장이 한승수 총리의 중동 방문을 수행해 15일 출국하자 총리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긴장을 풀게 됐다”는 농담이 오갔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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