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생계 외면한 自害… 반발 클듯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北-中총리 ‘우호의 해’ 축하 중국을 방문한 김영일 북한 총리(왼쪽)가 19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함께 ‘북-중 우호의 해’ 기념공연을 본 뒤 양손을 들어 관객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양국 수교 60주년인 올해를 ‘북-중 우호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北-中총리 ‘우호의 해’ 축하 중국을 방문한 김영일 북한 총리(왼쪽)가 19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함께 ‘북-중 우호의 해’ 기념공연을 본 뒤 양손을 들어 관객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양국 수교 60주년인 올해를 ‘북-중 우호의 해’로 정하고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北, 美식량지원 거부와 동시에 “내달부터 장마당서 수입품 못판다” 포고문

경제난 계속되자 ‘私경제 철폐’ 무리수

북한이 15일 전국의 장마당에 ‘판매 금지물품 품목’을 공시하고 다음 달 1일부터 이들 품목에 대한 전면 단속을 실시한다고 포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지식인들의 모임인 ‘NK 지식인 연대’는 17일 함경북도 회령시와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에 나붙은 포고문 전문과 함께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특히 이번 포고문은 북한이 미국에 식량지원 중단을 통보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해 주목을 끌고 있다.

∇사실상 장사 금지 포고=북한이 이번에 공포한 판매금지 물품은 2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회사에서 수입된 일체의 물품’, ‘국가 기업소가 생산한 제품’,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농토산물’, ‘수산물’, ‘의약품’, ‘개인이 만든 식료품과 포장하지 않은 식품’ 등 항목도 넓고 다양하다. 외국산 TV나 담배, 가구, 시계 등이 모두 이 항목들에 포함된다.

장마당에서 판매가 허용된 품목은 개인이 텃밭 등에서 생산한 곡물류와 계란, 육류, 기름 등이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외국산 ‘맛내기(조미료)’ 판매도 금지하고 국산 ‘맛내기’만 허용한 경우도 있다.

눈에 띄는 점은 판매가 허용된 물품들도 국가가 일일이 가격을 정해 놓았다는 점. 이를테면 기장은 1kg에 1800원, 팥은 2100원 하는 식이다.

판매 금지한 물품 중 많은 것들은 북한이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생산도 못하면서 수입 판매까지 금지한 것은 주민들을 고사시키는 것”이라는 등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당국이 장마당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조치도 간부들로 구성된 단속반원들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배경은=북한은 지난해 말에도 “설날부터 장마당을 식량거래를 포함해 한 달에 세 번만 열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실제 폐쇄조치는 유보했다.

다만 이번 포고령은 국가가 정한 가격이긴 하지만 식량 판매만큼은 상시거래를 허용해 지난해 말 포고령보다는 다소 완화됐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끊임없이 장마당을 없애려는 이유는 사경제를 없애기 위해서다. 사경제를 공식경제 영역으로 흡수하지 않고서는 경제 회생을 위한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미 화폐들이 대부분 장마당으로 흡수 유통돼 아무리 국가가 화폐를 찍어내도 인플레만 심화될 뿐 전혀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의 식량지원을 거부하고 주민들 대다수가 생계를 걸고 있는 장마당까지 폐쇄하는 이번 조치는 ‘자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 회생은커녕 주민들의 반발만 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난해 3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수천 명의 여성이 당국의 ‘장마당 상인 나이 제한’ 조치에 항의해 집단행동으로 요구를 관철시키는 등 주민들의 반발도 점점 대담해지고 조직화되는 양상이다. 아무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여론 악화를 무릅쓰고 장마당을 없애겠다는 발상은 북한 지도층이 내부 실정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끝이 보이지 않는 현 경제적 난국을 빨리 타개하고 싶어 몹시 초조해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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