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받은 金의장 “부여된 모든 권한 쓸 것”

  • 입력 2009년 2월 26일 03시 00분


■ 본회의 직권상정할지 관심

與 “흙 안묻히려 해” 성토… 이상득, 별도 회동도

金의장측 “직권상정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 없다”

공은 다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넘어갔다.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미디어 관계법이 위원장 직권으로 상정되면서 법안전쟁 1라운드가 끝났다.

당초 김 의장은 여권 핵심부로부터 중간 절차를 생략한 채 본회의 직권상정 카드를 쓰라는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법안이 일단 문방위에 상정됐기 때문에 김 의장은 남의 손을 빌려 일단 부담을 덜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나라당은 야당과 함께 법안을 논의할 생각을 갖고 있다. 야당과의 토론을 통해 법안을 깎고 다듬어 정상적인 절차대로 문방위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4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문방위 봉쇄나 본회의장 점거, 의사진행 방해 등을 하면 법안의 처리는커녕 논의도 쉽지 않다.

설사 문방위를 통과하더라도 야당인 유선호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사위에서 다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소수 야당에 의해 의사진행이 방해를 받을 경우 국회법 규정대로 김 의장이 직권상정 권한을 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물론 ‘상임위 법안 상정→토론 시도 및 불발→야당의 물리력 행사’ 등이 실제로 벌어지면 김 의장이 직권상정 권한을 발동할 수 있는 명분은 탄탄해진다. 한나라당도 내심 이 같은 상황을 바라고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직권상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의장이 그동안 보여준 미온적인 행보를 고려하면 여권이 생각한 구도대로 상황이 전개될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김 의장은 직권상정 발동 압력에 몰렸던 지난해 말 한나라당 지도부에 “직권상정 대상 법안을 줄여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80개가 넘는 법안을 일괄 상정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법안을 20개 안팎으로 대폭 줄이자 이번에는 “여야의 충분한 토론과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또 다른 조건을 달았다. 그는 결국 직권상정을 하지 않았다.

김 의장의 이런 태도에 한나라당은 격앙돼 있다. 한 중진 의원은 “김 의장이 손에 흙을 안 묻히려고 한다”며 “의장직 이후 당으로 돌아와 대표를 맡은 뒤 더 큰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 본인 경력에 흠집이 나는 일은 꺼리는 것 같다”고 성토했다. 한 친이(親李·친이명박)계 의원은 “지난주 청와대에서 나한테 김 의장을 좀 설득해 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라”며 “이런 식이라면 다시 당으로 돌아올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김 의장에 대한 압박도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최근 김 의장을 만나 직권상정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장실 주변에서는 이 의원과의 회동 이후 김 의장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고 전한다.

김 의장이 이날 성명에서 “의장에게 부여된 모든 권한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정황이 반영돼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에 대한 경고와 함께 여권 수뇌부에 본인의 의지를 보여줬다는 해석이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여권에서 그동안 숱하게 직권상정을 요구해 왔지만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김 의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동아닷컴 이철 기자


▲동아닷컴 이철 기자

민주 “무기한 농성… 무효 가처분신청”

긴급 의총… “與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

미디어 관계법안 기습 상정에 허를 찔린 민주당은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무기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진행된 본회의장 및 문방위 회의실 농성을 푼 지 50일 만에 재점거에 나선 것이다.

이날 오후 5시와 10시 문방위 회의실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을 향해 “최소한의 신의를 잃은 사람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 등의 표현을 써가며 ‘합의 위반’을 성토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1월 6일 원내교섭단체 합의문을 꺼내 보이면서 “이 합의문은 휴전협정문이 아니라 부끄러운 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문이었는데, 한나라당이 이를 또다시 파기했다”며 “한나라당이 시작한 전쟁에 맞서 MB악법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은 당초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계법안만 보류하면 여야 합의대로 이번 2월 국회에서 쟁점법안별로 상정, 합의처리, 협의처리해 줄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습 상정으로 유연한 대처 방침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쟁점법안이 없거나 민주당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를 보이콧(전면 중단)하거나 공전시키되, 정무위 행정안전위 등 한나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쟁점 상임위에서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 저지하는 방식으로 분리 대응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당초 모든 상임위 보이콧 방안을 검토했으나 한나라당에 법안 강행처리의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보이콧과 실력 저지를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또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이번 미디어 관계법을 기습 상정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여러 가지 하자를 드러내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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