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대표 “정치판 살벌해진 건 대변인도 책임”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 명대변인 출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쓴소리

표현 완곡해야 국민도 편해

‘짧은 말 긴 여운’ 원칙 새기길

한나라당 박희태(사진) 대표는 1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당 대변인의 최우선 과제는 상대방 비판이 아니라 당의 정책과 생각을 요약해 전달하는 것”이라며 “정치권의 논평이 독설로 가득하면 결코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 낼) 비판 기능을 못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1988년 12월부터 4년 3개월간 집권당인 민정당과 민자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간결하면서도 유머가 담긴 논평을 내 ‘영원한 대변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본보가 여야 논평 1000건을 분석해 보니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논평이 너무 많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논평에는 직설적 표현보다는 은유적이면서 해학이 담겨야 한다. 상대방에게 가슴에 총을 맞은 아픔보다는 ‘솜 망치’를 얻어맞았다는 기분을 안겨야 한다. 독설은 결코 강력한 비판이 되지 못한다. ‘짧은 말, 긴 여운’이란 원칙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대변인들이 그만둘 때 사과하는 일이 잦아졌다.

“일하는 동안 그런 말이 안 나오도록 해야지. 정치판이 살벌해진 것도 대변인 책임이 있다. 논평에 기지와 위트가 담겨야 정치판이 부드러워지고 국민의 마음이 편해진다.”

―후배 대변인에게 충고한다면….

“완곡한 표현으로도 할 말은 다 할 수 있다. 그런 어휘를 찾기 위해 부단히 고뇌하고 다듬어야 한다. 대변인은 말로 사는 게 아니라 머리로 승부해야 한다. 논평 발표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달라. ‘이렇게까지 독한 말을 써도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정제된 논평을 내야지 함부로 하면 (대변인이) 스스로 다친다.”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말의 품격’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을 못 들어봤다. 누군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지….

“뭐 그런 걸 일일이 이야기는 못하고….”

―상대 정당을 칭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과거에는 상대 정당 정치행사나 대표의 연설에 일일이 반박을 안 했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였다. 이런 관행이 깨지면서 정치의 격이 떨어졌지만 정치인이 부단히 노력해 흐름을 돌려놓아야 한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선진국의 정당 논평

▼英-獨, 정치공방보다는 정책 홍보

美-日, 인신공격-자극적 표현 자제▼

선진국의 정당 논평은 정치 공방보다는 정책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경우라도 사실을 토대로 하지 않은 근거 없는 인신공격은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정당은 한국처럼 정당마다 2, 3명의 대변인을 두고 있지만 주요 현안에 대한 견해는 당수나 원내대표 등이 직접 언론에 밝히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언론이 정당 대변인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도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올해 사회당의 베누아 하몽 대변인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신체적 특징을 거론하면서 “소인(小人) 콤플렉스가 있다”는 인신공격적인 논평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과 독일은 정당마다 관련 분야별로 전문 대변인을 두고 있어 한국처럼 ‘종합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 국가에서는 대변인 발언이 거의 매일 나오지만 그 내용은 정치 공방이 아닌 정책 설명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중앙당 대변인 제도가 없어 정당 논평 자체가 없다.

올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상대방에게 퍼부은 비난 논평은 모두 캠프의 책임 아래 이뤄진 것. 하지만 근거 없는 인신공격성 발언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인종문제나 성차별에 근거한 발언은 ‘금기’로 통한다.

일본도 ‘정당 대변인’이라는 직함은 없다. 그 대신 각 정당의 대표, 간사장, 국회대책위원장 등이 정당의 ‘입’ 역할을 한다. 일본 정치인과 언론은 자극적인 언어를 잘 쓰지 않는 특징이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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