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대니얼 스나이더]주한美대사는 한미외교의 거울

  • 입력 2008년 8월 19일 03시 01분


캐슬린 스티븐스 씨가 새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된 것은 한미관계의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일이다.

그동안 주한 미대사는 거의 전문가, 외교관, 그리고 동북아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는 일부 전직 정보관리 출신 인사가 맡았다. 두 명의 예외가 있었지만 모두 한국과 동북아 지역에 몰입해 온 학자였다. 한국은 미국이 정치적 논공행상에 따라 대사가 된 정치인에게 맡기지 않아온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의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면서 한국을 담당하던 20여 년 전 나는 서울에서 스티븐스 씨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주한 미대사관의 정치과에 근무하면서 한국의 젊은층과 노동계층에서 분출하는 민주화의 열기를 세밀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화봉사단’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미 한국을 잘 알고 있었고 한국어를 구사했다.

나는 지난 수십 년간 대부분의 주한 미대사를 만났다. 그들은 뛰어난 전문가들이었다. 도널드 그레그 씨는 여전히 한국과 깊이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스티븐 보즈워스 씨 역시 지금도 미국의 동북아 정책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 리처드 스나이더도 있다. 그는 1974∼78년 한국에서 대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오랜 외교관 경력의 정점에 서울에 왔다. 아버지는 오랜 공직 경력 중에서 주한 미대사 자리가 가장 도전적이고 성취감이 높은 임무였다고 말하곤 했다.

왜 주한 미대사 자리는 주로 전문가들에게 맡길까. 그것은 동맹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한미관계의 역사는 전장에서 맺어진 동지애와 의존의 불편함이 결합한 것이다. 주한 미대사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한국인들의 감정을 파악하는 민감함이 필수불가결하다. 그것은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자질이다.

한미관계가 언제나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과거엔 한미관계가 황금시대를 누린다는 (사실과 다른) 신화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론 양국 관계엔 이해의 충돌, 때론 서로에 대한 심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긴장이 있었다. 한국 정부 수립 이래 존재해 온 그런 긴장은 민주화로 인해 더 선명해졌다.

역대 주한 미대사들과 고위 외교관들, 그들과 함께 일했던 군 장교들은 그런 역사를 잘 안다. 그들은 양국 관계를 이끌어온 심오하고 때론 세속적인 이슈들에 대한 이해의 보물창고들이다. 한미관계를 한국의 입장에서 다뤘던 한국의 전직 외교관과 군인들에게서도 역시 비슷한 지혜의 보고를 찾을 수 있다.

양국 사이에 오랜 기간 인적 다리를 놓아온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 현대사는 물론 전후 미국 외교정책의 풍부한 그림이 그려진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도전, 제한적이고 실제적인 힘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과거에서부터 배울 게 많다.

이처럼 무궁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지식과 통찰을 수집하는 게 필요하다. 한미관계에 초점을 맞춘 구술(口述) 역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평화봉사단 봉사자에서부터 학자, 외교관, 사업가까지 양국 관계 구축에 깊이 관여해 온 사람들의 얘기를 수집해 디지털 형태로 자료화하면 학자와 언론인,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다. 구술 역사는 양국의 역사를 교직해 온 많은 사람들의, 때로 보이지 않았던 역할들을 비추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만드느라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미래의 한미 양국 세대에게 주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대니얼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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