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현대아산, 민감한 대북사업 할 능력 있나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3분


요즘 현대아산 임직원들의 표정은 어둡다.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 씨의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전면 중단됐고 ‘모든 것이 남측 탓’이란 북측의 억지 때문에 사태 해결의 기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현대아산 임원은 “체제가 완전히 다른 남북을 잇는 사업이어서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는 ‘금강산 관광사업은 남북한 정부 모두에 필요한 사업인 만큼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고, 해결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다. 예전처럼 결국 남북 당국 간에 정치적 해결이 이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도 적지 않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현대아산의 안이한 모습은 금강산 관광사업의 이런 정치성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대아산은 출입 제한이 없는 ‘자유지역’과 들어가면 이번처럼 총을 맞을 수 있는 군사경계지역 사이에 철제 펜스조차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실개천 물살이나 파도에 펜스가 넘어진다는 이유를 댔다. “극도로 민감한 대북사업을 하는 회사가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숨진 박 씨가 묵었던 비치호텔의 폐쇄회로(CC)TV는 표준 시간보다 13분이나 빠르게 설정돼 진상 조사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또 현대아산이 북측에 제공한 군사경계지역 내 CCTV는 가동조차 되지 않았다고 북측은 주장한다.

현대아산은 11일 오전 사건 발생 직후 ‘잘못된 정보가 남측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관광객들이 외부로 전화할 수 없도록 ‘기민하게’ 조치했다.

그러나 정작 그날 오후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 결정이 안 내려졌다’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북으로 올려 보냈다.

치마 입은 50대 여성 관광객을 향해 총격을 가한 북측의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아산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렵다. ‘군사경계지역 진입 방지용 철제 펜스를 좀 더 확실하게 쳐놓았다면…’ ‘자유구역 곳곳에 좀 더 많은 CCTV를 설치했다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대아산은 민감한 대북사업을 ‘결국은 어찌 되겠지’ 하는 아마추어 정신으로 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그것이 고인의 비극적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첫걸음일지 모른다.

부형권 산업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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