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무-정책팀’ 운영 어떻게

  • 입력 2008년 6월 23일 02시 57분


더 충실히 듣고 더 꼼꼼히 조율

《정정길 신임 대통령실장은 일요일인 22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통령실은 집행기구가 아니라 대통령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며 “대통령실은 앞에 나서기보다는 행정부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주력하자”고 말했다. 한마디로 정책집행은 정부 각 부처가, 국민과의 소통은 청와대가 주로 맡도록 역할분담을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2기(期) 정부 조직 운영 밑그림을 드러낸 것. 이 같은 구상은 특히 대통령실을 정무팀과 정책팀의 2원(元) 체제로 나눠 운영함으로써 구체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팀 맹형규 정무수석

다양한 채널로 민심청취… 문제점 조기 발견 주력

당정청-여론 피드백 살려 ‘한목소리’ 초점

이명박 정부의 2기(期) 청와대 비서진은 1기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소통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정무와 홍보기능을 대폭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팀장격인 맹형규(사진) 정무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정동기 민정수석비서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비서관과 박형준 홍보기획관(내정)으로 구성되는 정무팀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회의를 열고 정무적 고려가 필요한 각종 현안을 조율해나갈 계획이다.

▽정치 불신 초래한 소통 부재 극복이 목표=청와대의 정무기능 강화에는 특히 정정길 새 대통령실장의 의지가 강하게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은 주말인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2기 수석비서관들의 첫 조찬회동 자리에서도 “최근 정치 지형이 (정치권 밖에서 정치를 좌우하는) ‘아웃사이더 폴리틱스(Outsider Politics)’로 바뀌고 있다”면서 “소통 부재와 정치 불신도 하나의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2일 “그동안 ‘얼리 버드(early bird)’ 소리를 들어가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했지만 정작 밖에서는 무어라고 하는지에 대한 ‘피드백(feedback) 기능이 막혀 있어 민심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이 같은 자체 평가가 정무팀 구성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청와대는 그동안 내부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주요 국정 이슈에 대해 정부 차원의 통일된 의견을 도출하지 못한 채 상황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촛불시위’를 불러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과 관련해서도 농림수산식품부의 축산농가 대책을 보고받은 게 고작일 뿐 쇠고기 수입 재개로 예상되는 국내의 반발에 정무적 판단을 위한 회의 한 번 제대로 연 적이 없었다.

지난달 2일 촛불시위가 본격화한 이후로 민정수석비서관실은 줄곧 민심 진정을 위해 재협상을 주장한 반면 정무수석비서관실은 재협상 불가론을 펴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속적으로 이견을 노출하고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은 상황에 따라 흔들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사 파문과 공천 파동으로 기반세력인 범보수층 내에서도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어 가는데도 청와대는 설득력 있는 설명과 수습책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정수석비서관실과 기획조정비서관실이 내부 감찰 기능을 놓고 갈등을 빚고 대운하 및 공기업 민영화의 추진 여부 및 이행속도를 놓고 정부 부처와 청와대, 한나라당 사이에 엇박자가 이어지는데도 청와대는 이를 조정하지 못한 채 각종 소문과 ‘괴담’을 확산시켰다.

▽정무 판단 위한 관계 수석 대책회의 통해 범여권 대응능력 증대=이에 따라 앞으로는 정무수석이 주요 현안에 대한 총괄적 정무 판단을 토대로 관계 수석들과 수시회의를 열고 청와대 차원의 조율된 의견과 방향을 설정한 뒤 이를 정부 부처에 신속히 전파하는 역할을 맡을 방침이다.

맹 수석은 22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다양한 현안의 발생 단계에서부터 기동성 있는 협의를 통해 조기에 문제점을 점검하고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종의 ‘관계수석 대책회의’가 앞으로 수시로 열릴 것이다. 필요 시 정책팀과도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보에 관해서도 정무팀은 ‘선(先)청취, 후(後)홍보’ 시스템을 정착시킬 방침이라고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현안에 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들의 여론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렴한 뒤 그 결과를 심층 분석해 범여권 차원의 홍보를 전개한다는 것.

맹 수석이 휴일인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을 예고 없이 방문해 1시간 가까이 머물면서 “앞으로 수시로 만나 따가운 얘기 좀 자주 해달라”고 당부한 것도 ‘소통’을 위한 정무팀의 민심 청취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예컨대 공기업 선진화 과정에서 불거질 강성 노조의 반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 쇠고기 추가협상 발표와 청와대 전면 개편 이후 민심 향배와 이를 감안한 국정과제 순위 조정 등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위해 정무팀의 유기적 활동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강력한 천거를 받은 맹 수석을 중심으로 한나라당과도 기존의 정책 중심 당정회의 말고도 다양한 정무적 협의 채널을 가동함으로써 정국 현안에 대한 범여권의 대응 능력을 배가할 계획이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정책팀 방병원 경제수석

경제정책 총괄조정… 성장보다 안정에 무게 둘 듯

“컨트롤타워 역할은 강만수 장관이 계속” 전망도

“32년간 거시경제 정책조정 역할을 했는데 이보다 어려운 때도 있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박병원(사진) 신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은 20일 청와대에서 이런 인사말을 했다. 주목되는 키워드는 ‘조정’과 ‘소통’이다.

청와대 측에 따르면 박 수석이 경제정책의 총괄조정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안정적 성장’을 강조했던 그의 경제 관료로서 성향을 고려하면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성장에서 안정으로 빠르게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박 수석이 ‘보이지 않는 조정자’ 역할을 할 뿐 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은 여전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박병원 수석 중심의 경제 운용=일단은 박 수석이 장기 국정과제와 경제분야 전반을 조정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는 대통령실이 팀제로 바뀌면서 경제수석이 경제, 국정기획, 사회정책, 교육과학문화 분야의 정책을 총괄하는 점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또 김중수 전 경제수석이 정책 조율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을 받은 상황에서 기용된 만큼 박 수석은 거시경제 안정, 공기업 개혁 등 중요 현안과 관련해 자기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 정책의 기조가 성장에서 안정으로 바뀐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해 물가 안정 대책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높다. 재무부 출신으로 성장 위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강 장관에 비해 경제기획원 출신의 박 수석은 ‘기업 투자 유도→일자리 창출→소비 확대’의 원론적 경제 운용을 중시해 온 만큼 인위적 경기 부양보다는 기업환경 개선 및 서비스산업 선진화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첫 시험대는 ‘하반기 경제 운용 방향’ 수립=경제수석의 역할이 강화돼도 강 장관의 입지가 당장 축소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물리적으로 경제수석이 모든 부처를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강 장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이 여전하다는 것.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수석도 추후 재정부 장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인데 현직 장관과 불필요하게 충돌해 불편한 관계를 만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시험대는 하반기(7∼12월) 경제 운용 방향을 짜는 작업.

현재 재정부는 공식적으로 올해 6%의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를 5%대로 내릴지 검토 중이다. 성장보다는 안정에 무게 중심을 두는 박 수석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면 성장률 하향 조정 폭이 더 커질 수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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