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손상됐던 한미동맹 치유”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美 한반도 전문가 8인의 ‘李대통령 방미’ 평가

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19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방미외교에 대해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 동안 손상됐던 한미동맹을 치유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공통의 가치를 토대로 더욱 굳건한 동맹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기대를 뛰어넘은 회담=데릭 미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전임자에 의해 손상된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미래의 한미동맹 모습을 구체화하려 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지난 10년간의 한미 정상회담 중 최고의 회담으로 평가하고 싶다”며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거둔 회담”이라고 말했다.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 행정부는 물론 상하 양원과 한반도 전문가들까지 한목소리로 이 대통령을 환영했으며 이 같은 분위기는 40년 가까이 지켜봐 온 한미관계 중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번 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합의 내용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미국 내에서는 한국 새 정부와는 일할 만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한미관계를 양자관계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국제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한 단계 성숙한 동맹관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것도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지난 정권 때 생긴 한미관계의 상처는 이미 치유 과정에 들어섰다”며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개인적 관계가 좋아 보였다”고 설명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손에 잡히는 성과물이 많지 않지만 전반적인 한미관계의 기조(tone)를 바꿨고 두 정상 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성과”라며 “이제 첫 만남일 뿐이지만 협력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한미동맹의 복원을 강조했으며 이번 방미는 미리 뿌려놓은 씨앗의 열매를 수확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5년 전 정상회담과 비교하면=클링너 선임연구원은 “2003년 회의와 불신 속에서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동맹의 강화를 우선순위로 삼고 워싱턴을 방문한 이 대통령의 방미는 명확하게 대비된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때로 한미관계에 대해 비우호적인 발언을 해 백악관에 좌절감을 준 것과 달리 이 대통령의 경우 정상회담을 한 뒤 돌아서서 미국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당 지도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상하원 합동연설이 무산됐음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입 제한을 철폐하는 등 이 대통령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력은 미국 조야에 매우 깊은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플레이크 소장은 “선거 때 ‘미국에 안 가봤으면 어떻고 반미면 또 어떠냐’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의 환영 만찬 당시 참석자들은 그에 대한 환영을 유보(reserve)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이 대통령이 가난과 역경을 헤쳐 온 개인적 인생사를 진솔하게 얘기하는 대목에서 매우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고 개인적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출발은 좋지만… 과제 많아”=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 합의가 구체성이 부족해 앞으로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을 우선 미국 의회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연내 처리할 가능성을 적게는 5%, 많아도 50% 이내로 봤다. 그 이유로는 △민주당 후보들이 블루칼라층을 의식해 FTA 반대론을 펴고 있고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자동차 문제에 매우 민감하며 △일정상 우선순위인 콜롬비아 FTA 처리가 막혀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이 대통령이 이번에 공화당의 존 매케인,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 대선 주자들과 만나지 못한 데 대해 미첼 연구원은 “이들과 만났다면 유용한 만남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스나이더 연구원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FTA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과 면담했다면 조금 어색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주한미군의 3500명 추가 감군 계획을 동결한 데 대해 스나이더 연구원은 “실질적인 억지력보다는 정치적인 상징성이 더 강하다”고 평가했고, 그린 교수도 “군사동맹의 가치를 옹호하는 한편 강력한 정치적 의지의 서약(commitment)”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부시 대통령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이슈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체상태에 있는 북핵 문제의 진전에 도움이 된다”며 “이 대통령이 북한에 상주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의한 것 역시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점에서 좋은 제안”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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