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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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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북한도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북측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음을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만남’이라는 남북대화 기본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대화 제안에 앞서 “북한 핵 문제의 해결과 북한 주민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이란 전제를 달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을 바라는 정부 당국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다만 정부는 과거 형식에 매달린 대화가 아닌 진정성이 포함된 실질적 대화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이 우리의 진정성을 곧 이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 남북관계도 지난 10년간의 틀이 새롭게 정립되는 조정 기간을 거치고 있다”며 ‘조정기간’으로 평가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 있었던 북한의 도발적인 언동들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그러한 관점(조정기간)에서 원칙을 갖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언행을 ‘도발적인 언동’이라고 정의한 것은 북한의 ‘위협’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동시에 북의 대남 도발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북한에 이로운 길이라는 것을 믿도록 설득하겠다”며 “우리는 북한 주민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골격인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구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북한 사회를 개방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 주민 생활에도 관심이 있다’는 우회적 표현을 통해 인도주의적 지원은 계속 해 나가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거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함구한 것과 달리 “지적할 것은 지적하겠다”는 의미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미국만을 협상 상대로 하고 우리나라를 배제하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쓸 가능성에 대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의 협상만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정한 뒤 “새 정부는 미국과 동맹 관계뿐 아니라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전략을 함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남북한 당사자 간 해결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대북관계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회견 이모저모
“5년안에 선진국가 기틀” 회견전 직접 넣어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회견 때마다 늘 신경 쓰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심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이 된 뒤 첫 회견으로 국민에게 믿음과 신뢰를 줘야 했기 때문이다.
▽회견문 4차례 이상 수정=이 대통령은 회견 당일 아침까지 회견문을 직접 수정하는 열의를 보였다. 연설 전반부의 ‘이제 더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 통합과 타협의 정치를 펴면서’에서 ‘국민 통합’이라는 표현을 직접 넣었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의 ‘앞으로 5년 안에 선진국가의 기틀을 잡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대목도 이 대통령이 당일 아침 직접 넣은 것이다.
회견문은 대통령정무수석실이 초안을 잡았다. 하지만 12일 수석비서관 전체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문장이나 어조 분위기를 결연하고 자신감이 넘치게 수정하는 게 낫겠다”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수정에 이어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12일 밤 최종본을 마련했고, 이 대통령은 13일 아침 다시 수정했다.
▽국내 정치 중요성 강조=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국내 정치에 대해 말을 아꼈던 것과는 달리 이날 회견에서는 국내 정치 분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5월 국회 소집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일문일답에서는 ‘친박(親朴) 복당’ 문제 등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길게 언급해 회견 시간이 5분 정도 연장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 살리기의 관건이 한나라당과 국회의 협조에 달려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이 특별히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며 “당내 문제에 대해서는 평소 하고 싶었던 말씀을 다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키워드는 역시 ‘변화’와 ‘경제’=이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변화’(10차례)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열린 지난해 9월 회견에서도 이 대통령은 ‘변화’라는 용어를 가장 많은 횟수인 18번 언급해 예나 지금이나 국정 운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게 ‘변화’임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의 ‘브랜드’가 된 ‘경제’라는 단어도 여전히 많이 사용됐다. 이날 회견에서는 9차례 사용했고, 지난해 9월 회견에서는 8차례 언급했다.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새롭게 많이 쓰는 단어는 ‘선진’ ‘일류’다. 취임 전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던 ‘선진’ 단어는 취임사에서 15차례 사용했고, 이번 회견에서도 5차례 언급됐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