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민주주의’ 아직 머나먼 봄?

  • 입력 2008년 3월 22일 03시 00분


2004년 17대 총선 때 ‘정당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며 여야가 도입했던 ‘상향식 경선’을 통한 공천 제도가 이번 총선에서는 종적을 감췄다.

상향식 경선이란 지역구의 당원이나 대의원, 또는 일반 국민이 투표를 통해 공직선거에 나설 후보를 선출하는 제도로 정당 민주화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적인 제도이다.

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243곳 중 경합지역을 대상으로 열린우리당은 80여 곳, 한나라당은 20곳 안팎, 새천년민주당은 70여 곳에서 경선을 통해 총선 후보를 선정했다.

당시 여야가 상향식 경선제도를 도입하자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한국 정당사의 획기적 사건’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한국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상향식 경선은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지역 유권자의 의사를 후보 선출 단계에서부터 반영해 당 지도부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당 선진국인 미국은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를 상향식 경선을 통해 선출한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올해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서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을 단 한 곳도 실시하지 않았다. 대신 당내외 10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가 서류 및 면접 심사를 통해 후보를 ‘낙점’하고 있다.

한국 정당사에서 국회의원 후보 공천 방식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제왕적 당 총재’에 의한 하향식 공천에서 2004년에는 일부 상향식 경선제 도입을 지나 다시 중앙당의 하향식 공천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금의 하향식 공천은 과거와 달리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위원회가 일정한 권한을 분점하는 형식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선 실종 현상을 두고 당내 민주주의 후퇴라거나 과거 밀실공천으로의 회귀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경선은 지역 토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여서 정치 신인의 원내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단점도 있다. 경선에 이기기 위해 후보들이 조직 동원과 진성당원 급조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지방의 당 조직이 분열하는 등 후유증도 만만찮았다. 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공천 영향력이 약해지는 상향식 경선 제도를 선호하지 않는 점도 경선이 자취를 감추게 된 요인 중 하나다.

정당의 민주화와 제도화 수준이 높지 않은 한국 정치 상황에서 상향식 공천을 확대 실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일부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 등에서는 정당 및 정치 발전의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상향식 경선의 실종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는 21일 “공천 탈락자들의 반발과 탈당, 무소속 출마 등이 잇따르는 것은 공천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고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경선 부작용이 있다면 서서히 고쳐 나가는 식으로 풀어가야지 제도를 아예 없애는 것은 과거로 완전히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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