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정국운영 ‘비싼 수업료’ 치러

  • 입력 2008년 2월 28일 02시 55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靑대변인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2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靑대변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27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증실패 → 버티기 → 여론악화 → 결국 철회

남주홍-박은경 장관 후보자 사퇴

왜 이런일이 보안에 신경쓰다 ‘크로스체크’ 놓쳐

문책 있을까 “경고 필요” “취임초부터 위축” 찬반

향후 파장은 ‘인사 정국’ 반전 못하면 총선 먹구름

《27일 오후 남주홍(통일) 박은경(환경) 장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발표하기 1시간 전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은 밝지만 비장해 보였다. 일부 측근들의 신경은 날카롭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대통령이 18일 발표한 장관 후보자 15명 중 3명이 각종 의혹으로 낙마하자 청와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사 검증 실패→정무 판단 착오→여론 악화→장관 임명 연쇄 철회라는, 새 정부 출범 후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

○위기관리 시스템 전면 쇄신론 부상

이번 사태의 1차적 원인은 부실한 인선 및 검증 시스템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 관계자는 “경제 살리겠다고 나선 대통령에게 흰 도화지는커녕, 라면 국물 등이 묻은 쓰레기봉투를 쥐여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장관 인선은 여러 갈래의 추천을 받은 뒤 윤한홍 서울시 인사과장 등의 도움을 받아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이 검증을 실무 지휘하고,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최종 점검했다. 인사위원회 등 공식 논의 시스템을 이용하기보다는 보안을 의식해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도 농담 삼아 기자들에게 “누가 장관 후보냐”고 물을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검증 과정에서 ‘크로스 체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문제가 된 남주홍, 박은경 후보자는 정부조직 개편 협상과 이 대통령의 ‘조각 발표’ 단행 과정에서 뒤늦게 끼어들어 간 경우라서 철저하게 검증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는데도 “밀리면 정국 주도권을 놓친다”며 한동안 버틴 청와대의 정국 판단 및 위기관리 능력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며칠 전부터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버틸수록 (4월 총선에서 건질) 의석수만 더 잃는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후보자 지명 철회나 자진사퇴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결국 통합민주당이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동의안 처리를 연기하고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문제 후보자 교체를 건의한 뒤에야 두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겠다고 밝혔다.

○4월 총선 영향 최소화 부심

이에 따라 청와대 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관련자에 대한 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인선에 관여한 대부분 인사들이 청와대 내에서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만큼 향후 유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가시적인 경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류 실장, 박 비서관 등이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데다 새 정부 출범 초부터 청와대 핵심 인사를 인책할 경우 정국 운영 동력(動力)이 약해지고 공직사회도 동요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무 라인은 아직 체제도 온전히 갖추지 못한 상태다.

아무튼 청와대는 이번에 연쇄 사퇴 파동이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검증 및 정무 시스템 보완 시급’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파동이 종료됐다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4월 총선에 미칠 영향은 여전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민주당의 문제 제기가 정부조직 개편 협상처럼 ‘새 정부 발목 잡기’로 비치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보는 여론이 우세하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이다.

청와대는 결국 이번 파문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 살리기라는 ‘이명박 코드’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내 시스템은 신속하게 보완하면서, 민생 경제 회복을 기치로 내걸어 대대적인 국면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날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 안정을 위해서는 의회의 안정이 필요하다”며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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