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평양 앙상블’ 아리랑 합주에 관객 어깨춤

  • 입력 2008년 2월 26일 19시 59분



▲ 뉴욕필, 평양공연<로이터/동아닷컴 특약>

26일 오후6시 평양시 대동강 구역 청류동의 동평양대극장. 1500명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극장 안에는 평양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국기'가 보였다. 무대 왼쪽에 걸린 미국의 성조기였다. 무대 오른쪽에는 북한 인공기가 걸렸다. 뉴욕 필하모닉의 1만4589번째 콘서트이자 북한 사상 처음으로 미국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린 날이었다.

○…평양 시민들에게 익숙한 북한 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극장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나 뉴욕필이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중 제3막 서곡을 힘차게 연주하면서 긴장감은 차츰 사그라졌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평양시민들의 관람 태도는 열성적이었다. 대부분 뉴욕필이 미리 배포한 작품 설명 내용을 꼼꼼히 읽으면서 연주에 열중했다. 뒤쪽에 앉아있던 일부 관객은 오페라용 쌍안경을 꺼내서 무대를 살피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세 번재 곡인 조지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이 이어지면서 거슈윈 특유의 자유분방한 미국적 스윙 리듬에 한때 관객들이 어색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곧 첫 두 곡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갈채가 뒤따랐다.

뉴욕필은 이어 앙코르곡으로 뉴욕필 지휘자이기도 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 등을 선보였다.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것은 마지막 세 번째 앙코르곡이었다. 뉴욕필은 민요 '아리랑'을 북측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했다. 북측 개량 목관악기를 연주하는 북한 연주자 6명이 뉴욕필과 함께 익숙한 선율에 호흡을 맞추자 관객들은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본 공연에 앞서 이날 오전부터 열린 리허설에서 지휘자 로린 마젤은 청중들에게 연주 곡목을 일일이 소개했다. 그는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누군가가 '평양의 아메리카인'을 작곡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리허설 중간 중간 '즐겁게 감상하세요'라는 등 한국말로 직접 인사를 건네 박수를 받았다.

한편 뉴욕필 단원들은 이날 리허설이 끝낸 뒤 평양음악대학 학생들에게 현악기 줄, 악보, 음악CD 등 다양한 선물을 전달했다.

전달식에 참석한 이 학교 3학년 김철구 군은 "비올라를 연주하기 때문에 뉴욕필 비올라 연주자가 연주하는 모습을 꼼꼼히 지켜봤는데 황홀한 연주였다"고 말했다.

리허설 공연을 관람한 관객 정용화씨는 "오늘 연주된 곡은 처음 들었지만 지휘자가 경륜이 있어서인지 많은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 리허설 청중 중에는 음악교사들과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리허설에 이어 오후3시 평양음악대학 연습실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스터 클래스(교습)가 열렸다.

이 학교에서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뉴욕필 단원들로부터 개인교습을 받는다는 점에 감격하는 표정이었다. 뉴욕필 단원들도 학생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반복해서 가르치는 등 열성을 다했다.

○…한편 일부 한국 언론에서 26일 본 공연에 앞서 연주된 미국 국가의 제목을 '성조기여 영원하라'로 표기하자 방북단의 미국인 관계자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뉴욕 공영라디오인 WNYC의 음악전문 프로그램 진행자로 뉴욕필 평양공연을 취재 중인 존 세이퍼 씨는 "미국 국가와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 and Stripes Forever)'는 전혀 다른 음악"이라며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애국적 행진곡"이라고 말했다.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존 필립 수자가 1896년에 작곡한 곡으로 주로 관악 밴드에서 연주된다. 미국 국가는 1931년 미 의회결의로 공식 제정되었으며 제목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이다. 별이 빛나는 깃발이란 물론 성조기를 뜻한다.

평양=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