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연욱]특검 과잉 유감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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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5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엔 최재경 특별수사팀장(특수1부장)을 포함한 수사팀 검사 12명 전원이 배석했다. 최 부장을 비롯한 수사팀 검사들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이들은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발표 내용에 의견 일치를 봤다고 한다. 출신 지역과 학연, 정치적 지향성을 뛰어넘어 사건 실체에 공감한 것이다.

임채진 검찰총장도 이날 대검청사에서 검찰 수뇌부와 같은 내용의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도 참석자들은 만장일치였다. 김 차장은 이를 토대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5년 전 상황은 달랐다. 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2002년 10월 검찰은 김대업의 ‘병풍(兵風)’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내홍을 겪었다.

당시 주임 검사이던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수사 결과 발표 현장에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검찰 주변에선 병풍 의혹이 신빙성이 없다고 본 일선 수사 검사들과의 불화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병풍 의혹에 신빙성이 없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축소하려는 여권의 움직임도 감지됐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가 검찰 수뇌부에 병풍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공개 기자회견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는 얘기가 법조계 주변에 무성했다.

이번 김경준 씨 관련 수사 결과에 검찰은 5년 전과 달리 한목소리를 냈다. “할 만큼 했다”는 자신감이 검사들의 표정에서 배어났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은 수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대통합민주신당(신당)은 ‘정치 검찰’이라고 비난하며 5일 이 후보의 주가조작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발의했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후보 측까지 ‘검찰 흔들기’에 가세했다.

하지만 신당 측이 특검법 카드를 불쑥 꺼낸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신당은 검찰이 지난달 6일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이 후보 관련 의혹 수사에 들어가자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특검을 거론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3개월 전 신당은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특검 법안을 국회에 발의해 놓았지만 당내에서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기엔 이번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김 차장과 최 부장이 올해 8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에 대해 ‘제3자 소유로 보인다’고 발표해 이명박 후보에게 타격을 줬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로 김 씨의 ‘사기꾼’ 행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자 검찰에 ‘희망’을 걸었던 신당은 검찰 비난으로 선회했다.

급기야 정동영 후보가 6일 김 씨를 “성공한 이민 2세로 대한민국 엘리트”라고 치켜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김 씨가 한글 이면계약서를 위조하고, 주가 조작에 적극 관여하며 ‘사기꾼’ 행각을 벌인 혐의는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관련자들의 진술까지 확보돼 있다. 김 씨 본인의 진술도 그렇지만 김 씨와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검찰 조사에서 같은 내용을 밝혔다.

네거티브 공세에 목을 매다 보니 수사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는 있지만 사건의 실체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팩트(사실)는 신성한 것’이다.

정연욱 사회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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