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합집산… 네거티브… 공약개발 시간도 의지도 없다

  • 입력 2007년 11월 26일 03시 03분


코멘트
본보 매니페스토 자문교수팀이 ‘2007 대선과 정책선거’를 주제로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0층 회의실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 김영호 국방대 교수,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 예종석 한양대, 정영근 선문대, 임성호 경희대 교수. 이훈구 기자
본보 매니페스토 자문교수팀이 ‘2007 대선과 정책선거’를 주제로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0층 회의실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 김영호 국방대 교수, 양승함 한국정치학회장, 예종석 한양대, 정영근 선문대, 임성호 경희대 교수. 이훈구 기자
정책선거 실종, 이대로 좋은가

동아일보 매니페스토 평가단 교수 6명 긴급좌담

《대선 후보 등록 첫날인 25일 본보 ‘2007 대선 매니페스토 평가단’ 소속 교수 6명이 본사 회의실에서 올해 대선과 정책 선거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는 양승함(연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정치학회장과 김영호 국방대 교수, 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 예종석 한양대 교수, 임성호 경희대 교수, 정영근 선문대 교수(이상 가나다순)가 참석했다. 양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책선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그 원인으로 범여권의 이합집산 등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점과 네거티브 캠페인, 유권자들의 의식 등을 꼽았다.》

정책선거라는 관점에서 올해 대선 전체의 양상을 평가한다면

▽양 회장=심각하게 위태로운 선거가 되고 있다. 이합집산을 거듭한 범여권 후보들은 정책 개발을 할 시간도 없었다. 정책선거는 정당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정당의 이념과 노선에 기반을 두고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예 교수=정책도 없이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연루 여부에 초점이 있는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만 쳐다보는 상황이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란 것도 방향만 있고 실천계획이 없다. 방향만 놓고 볼 때는 대동소이하다. 이럴 바에야 선거 결과를 검찰이 정해 주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나.

▽정 교수=올해 대선에서는 정당의 역할이 너무 위축됐다. 정당 색깔과 맞는 후보의 공약이 제시돼야 하는데 어느 정당이 보수고 어느 정당이 진보인지 잘 분간도 안 된다. 언론의 역할도 너무 부진하지 않았나 싶다. 선진국에서는 언론이 대선 1년 전부터 이슈를 주도하는데 우리는 정책보다는 사건 위주로 보도하는 것 같다.

▽신 교수=과거의 대선이나 총선은 과연 이번 대선보다 나은 선거였을까. 지금은 정책선거가 안 되고 있다고 얘기들 하지만 과거에는 정책선거가 아예 논의도 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은 정책선거를 할 의지가 없다고 본다.

▽김 교수=국민이 ‘보수와 진보라는 큰 이념적 경쟁이 있다’는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존재하고, 두 세력이 경쟁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양쪽 대표 선수가 정해지지 않은 데서 혼선이 빚어지는 것 같다. 대선주자들도 구체적으로 공약을 던지면 표 계산도 복잡해지고 당선될 때 문제가 될 것 같으니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발표하고 있다.

▽임 교수=한국 상황에서 매니페스토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본다. 매니페스토는 정당 차원에서 추진될 때 실효성이 있는데 대통령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도 영국 일본 등 내각제 국가에서 활성화됐다. 우리가 매니페스토를 도입하려 했던 것은 정책선거가 너무 안 되니까 선거 풍토를 바꿔 보기 위해 고육책으로 택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이 끝은 아니다. 이번 대선이 엉망이라고 우리가 올해 도입한 싹을 없애는 것은 정치발전 차원에서 건설적이지 않다.

정책선거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뭐라고 보나

▽양 회장=1차적으로 범여권 때문이라고 본다. 대선은 집권 실적에 대해 평가받는 것인데 여권은 당을 해체하고 합당을 반복하며 지리멸렬 상태가 됐다. 야당에서는 당내 대선 후보 경선이 오히려 정책선거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인신공격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하면서 정당경선의 의미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정책 대결을 벌이기보다 상대의 흠이나 결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네거티브 캠페인에 더 초점을 맞추는 그런 선거 풍토도 문제다. 개별 후보의 부패, 부조리 의혹에 집중하다 보니 정책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예 교수=정치인들이 이런 식으로 이합집산하면 정책이 있을 수 없다. 범여권은 다시 합당하기 위해 탈당하고, 분당하고, 시민사회 출신 인사를 붙여 새 세력이 됐다고 한다. 야당에서 좋은 시절을 다 보낸 인사가 여권으로 옮겼는데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매니페스토는 대선 후보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정당에서 공약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이 매일 바뀌니 공약도 춤출 것 아니냐.

▽정 교수=올해 대선이 퇴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후보 선출 시기의 문제 때문인 것 같다. 과거에는 적어도 선거일 6개월 전에는 후보군이 정리됐고, 3개월 전에는 공약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대선 한 달 전인데도 후보군이 정리가 안 됐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누가 어떻게 수치화하겠나.

▽신 교수=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정당들이 가진 구조적인 한계에 있다고 본다. 정당 후보가 그 정당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정책을 내는 상황이다. 한국 정당들이 정책 중심, 이념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정치인과 유권자가 모두 네거티브 캠페인에 너무 익숙하다. 실제로 네거티브 ‘한 방’이 우리 선거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정책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쉬운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서 선거에서 이기려는 게 우리 정치문화에 깊숙이 남아 있다.

▽김 교수=동감이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당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문제고. 장기적으로는 선거법 전체를 손봐야 한다.

▽임 교수=선거법으로 경선 일정도 제도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각 정당이 경선 일정을 정하는 게 아니라 주법에 따른다. 나아가 ‘국민 탓’을 해야 하는 처지가 굉장히 씁쓸하다. 미국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대선 직전에 느닷없이 민주당을 탈당해서 출마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겠나. 그런데 우리는 20% 이상의 지지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우리가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기간 후보들과 유권자에게 바라는 점은

▽임 교수=대선 후보들이 너무 개별적인 정책으로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어떤 철학으로 나라를 이끌고 가겠다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다.

▽김 교수=이번 대선에서는 외교안보 분야 이야기가 너무 안 나온다. 대선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인데 대북정책은 그나마 나오지만 한미동맹이라든가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 등의 이야기가 좀 더 나왔으면 한다.

▽신 교수=중앙선관위가 정한 토론회 외에 방송사에서 하는 토론회에 응하지 않는 후보도 있는데, 정책을 논할 수 있는 장이 더 필요하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일수록 자기 지지율이 낮아질까봐 TV 토론을 피하는 경향이 높다. 후보자들은 자기 정책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지만 유권자들은 정책 사안에 대한 후보자 간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정 교수=후보들이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 참여자나 참모들을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예 교수=다들 ‘돌발상황’을 기대하지 말고 이제라도 선거답게 치러 보자. 선거운동이 좀 차분하게 갔으면 좋겠다. 매번 대선 후보 TV 토론회를 보면 ‘암기 능력 테스트’가 아닌가 싶어서 답답한데 그런 점은 지양해야겠다.

▽양 회장=유권자들도 ‘못 살겠다’는 수준을 넘어 정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객관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수(數)의 참여’보다는 ‘질(質)의 참여’가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본다. 숙고하는 유권자, 사고하는 유권자가 됐으면 좋겠다.

■좌담 참석 교수

양승함 연세대 행정대학원장(비교정치)·동아일보 매니페스토 평가단 대표

김영호 국방대 국제관계학부 교수(국제정치)

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선거 정당)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소비자행동)

임성호 경희대 사회과학부 교수(정치과정)

정영근 선문대 국제경제학과 교수(거시경제)

정리=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