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이래도 사과할 ‘깜’이 안 되나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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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와 종교계, 관계, 재계, 예술계 등 온 나라를 들쑤셔 놓았던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신정아 씨 사건이 두 사람의 구속 기소로 일단락됐다. 수사 100일 만이다.

검찰은 이 사건의 성격을 ‘최고 권력자가 연루된 권력남용 사건’으로 규정했다. ‘정권 3인자’였던 변 전 실장이 연인을 비호하기 위해 멋대로 특별교부세를 배정한 사실이 드러났고, 신 씨는 연인인 정권 실세를 통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권에까지 관여한 의혹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31일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사건 초기 노 대통령이 “깜도 안 되는 의혹” “꼭 소설 같다”며 변 전 실장을 두둔했던 만큼 대국민 사과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현재로선 적절하지 않다”며 “노 대통령이 이미 9월 초 기본적인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9월 11일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난감하게 됐다.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이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천 대변인은 대국민 사과가 부적절한 이유를 들었다. “변 전 실장이 지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일탈 행위’를 했기 때문에 검찰이 ‘권력형’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본다” “검찰이 ‘윗선’ 개입설, 권력의 조직적 개입 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기소 단계인 만큼 새로운 사실이 확인될지, 검찰이 기소한 사실들이 확정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최측근이 권력을 남용해 국가 기강을 문란하게 했지만 청와대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다.

검찰의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변 전 실장과 신 씨가 김석원 쌍용그룹 명예회장의 특별사면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을 수사할 방침이라고 한다.

‘깜도 안 되는’ 단순한 학력 위조 사건이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발전했다. 이번 사건은 정치뿐만 아니라 수사도 생물임을 보여줬다. 그래서 검찰의 보강수사 결과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가 대국민 사과를 거부하는 것은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려면 1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정권의 임기가 넉 달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어물쩍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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