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개혁-개방은 北이 알아서 할 일”

  • 입력 2007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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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결과 합동 브리핑이재정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합동 브리핑을 했다. 원대연 기자
회담 결과 합동 브리핑
이재정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합동 브리핑을 했다. 원대연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서명한 남북공동선언문.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서명한 남북공동선언문. 연합뉴스
《“북한의 개혁 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이 언급은 남북 경제협력으로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 평화를 이룬다는 정부의 기존 방침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한계를 스스로 시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경협은 왜…” 정책 혼선

▽개혁 개방 ‘이끌자’에서 ‘놔두자’=노 대통령은 4일 개성공단을 방문해 “그동안 개성공단이 잘되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를 해 보니 적어도 정부는 그런 말을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개혁 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불편만 해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3일 평양에서 방북대표단과 오찬을 하면서도 “개성공단을 개혁과 개방의 표본이라고 많이 이야기했는데 북한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개성공단의 성과를 말할 때는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한의 경제 지원과 투자를 북한 체제 붕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북한에 불신감과 거부감을 주는 개혁 개방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것. 대신 남북 경협이 원활하게 이뤄져 북한의 경제난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남북의 사회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도록 ‘불편’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어긋난다. 남북 경협과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게 햇볕정책의 기본 논리이기 때문.

노 대통령은 그동안 “햇볕정책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절대적 조건이기 때문에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남북 경협을 통한 북한의 개혁 개방 유도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했다.

北체제위협 ‘오해’ 부를 수 있다고 판단

정상회담중 햇볕정책 한계 느꼈을수도

‘DJ 계승’ 참여정부 정책기조에 어긋나

▽햇볕정책 한계 느꼈나=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만나 경협에 대해 논의하면서 ‘벽’에 부딪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점진적인 북한의 개혁 개방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한계를 느꼈다는 것.

노 대통령이 4일 정상회담 보고회에서 “김 위원장과의 첫 회담은 좀 힘이 들었다” “남북한의 벽이 두꺼워 눈앞이 캄캄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기 내내 햇볕정책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을 고수해 온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난 직후 대북정책 기조를 갑자기 바꾸기로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햇볕정책에 따라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뤄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건설, 경의선 복원, 전력 설비 지원 등 대규모 남북 경협의 ‘근거’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을 만나 한계를 느꼈다고 해도 기존 대북정책에 따른 논리로 설득하고 성과를 이끌어 내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며 “만나서 (논의를) 해보니까 잘 안 돼서 기존 정책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남북 경협을 통한 북한의 개혁 개방 유도라는 목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 경협사업 역시 북한에 투자할 기업이 나서고, 북한은 기업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활동을 보장하는 개혁 개방의 첫 단계부터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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