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 행정비밀…” 정보 감추는 정부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부와 공공기관이 일반 국민의 정보공개 요구를 부당한 이유로 거부했다가 법원 소송에서 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문서와 기록물이 보관돼 있는 정부대전청사의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열람실에서 정보공개 신청자들이 자신이 요청한 문서를 열람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부와 공공기관이 일반 국민의 정보공개 요구를 부당한 이유로 거부했다가 법원 소송에서 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문서와 기록물이 보관돼 있는 정부대전청사의 국가기록원 국가기록열람실에서 정보공개 신청자들이 자신이 요청한 문서를 열람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강원 춘천시에 사는 유모(42) 씨는 지난해 춘천의 주한미군 기지 ‘캠프케이지’의 환경오염 조사 결과와 비용을 공개해 달라고 환경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유 씨가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에 비공개 대상으로 규정돼 있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관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유 씨는 법원에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지난해 11월 1심과 지난달 항소심에서 모두 이겼다. 법원은 환경부의 주장과 달리 유 씨가 공개를 요구한 정보가 국가 안전보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례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부당하게 일반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다가 소송을 당해 패소하는 비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

본보가 2003년 1월∼2007년 6월 20일 서울행정법원을 포함한 전국의 1심 법원이 판결한 221건의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의 결과를 분석한 결과 2003년 43.8%이던 정부 및 공공기관의 패소율이 2004년 50%, 2005년 59.6%, 2006년 66.7%, 2007년 61.8%(6월 20일까지)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한 공개 거부로 정부나 공공기관이 소송에서 지는 사례는 2003년 14건, 2004년 21건, 2005년 28건, 2006년 44건 등으로 매년 늘고 있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이 소송에서 이긴 것은 매년 14∼18건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 ‘정보공개 거부’ 불복 소송 급증세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이 패소하는 일이 늘고 있는 것은 정보공개법에 규정된 ‘비공개 대상 정보’를 정부와 공공기관 측이 자의적으로 폭넓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주로 해당 정보를 공개하면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영업상 비밀이거나 보관하고 있지 않은 자료라는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탈락자들이 “응시자들의 평균 점수 등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자 “보관하고 있지 않은 자료”라며 공개를 거부했다가 소송에서 졌다.

공단 측은 응시자들의 평균 점수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법원은 “몇 가지 조건을 설정해 컴퓨터로 검색 및 편집하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라며 공단 측과 다르게 해석했다.

일반인이 요구한 형태의 자료는 아니더라도 데이터를 가공하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료까지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면 국민의 알권리와 정보공개법의 입법 취지가 무력화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서울행정법원 김용찬 부장판사는 “정보공개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개 또는 비공개 대상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며 “판례가 꾸준히 나오는데도 공공기관 패소 사례가 줄지 않는 것은 법원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자의적 해석에 따라 공공기관이 ‘비공개’ 대상 정보를 폭넓게 적용하는 바람에 정보공개 거부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도 해마다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36건이던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이 2003년 43건, 2004년 57건, 2005년 79건, 2006년 99건, 2007년 73건(5월 22일 현재)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보공개를 거부당했을 때 낼 수 있는 이의신청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소송 증가의 한 요인이다.

행정자치부가 발행한 ‘2005년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비공개 또는 부분 공개된 정보에 대해 1315건의 이의 신청이 있었으나 이 중 받아들여진 것은 383건(29%)뿐이다.

○ “애매하고 막연한 법 조항 고쳐야”

정보공개 소송에서 법원이 정부나 공공기관보다는 일반 국민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정보 비공개를 통해 얻는 기관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알권리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지만 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법의 입법 목적에 근거해 국민의 정보공개 청구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

대한주택공사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아파트 분양 원가와 공개될 경우 앞으로의 대입정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인적자원부가 공개를 거부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의 원점수를 법원이 최근 공개하라고 판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행정법원 김정욱 판사는 “법원이 예전보다는 정보공개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의 범위를 넓혀 가야 한다는 전박적인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법원 내에서는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비공개 대상 정보에 관해 자의적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애매하고 막연한 법 조항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공개법 9조에서는 비공개 대상 정보를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정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등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범위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