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아무나 대통령이 되려는 나라

  • 입력 2007년 5월 11일 19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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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고추로 유명한 충북 J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S 씨는 늘 “내 지역구에서 나온 고추 중에서 내 손을 안 거친 고추가 없소”라고 자랑했다. 정치에 뜻을 둔 이래 그만큼 열심히 지역구 관리를 했다는 얘기인데, 오죽하면 남의 집 고추까지 따주었을까.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이 ‘금배지를 거저 단 줄 아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2000년대 초, 호남의 한 지역구에서 사투 끝에 당선된 한 여당 의원은 이런 충고를 했다. “혹시라도 선거에 나가거들랑 마누라가 라이방(선글라스) 쓰고 장터거리에 나가지 않도록 하소, 큰일 나네.” 알 만했다. 후보 부인이 남편 선거운동 한다고 마치 연예인처럼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돌아다니면 시골 정서에 곱게 비칠 리 없다.

이 땅에서 정치를 한다는 게 이처럼 힘들고 조심스럽다. 길을 가다가도 모내기를 하고 있으면 바지 걷고 들어가 모 몇 포기는 꽂고 가야 한다. 한국정치는 그래서 후진성을 못 벗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국회의원이 국사(國事)를 논해야지 고추나 따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한국정치의 이런 특성에 긍정적인 면도 많다고 생각한다. 함께 고추를 따면서 이뤄지는 지역구 주민들과의 소통이 곧 우리 정치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소통과 스킨십이 쌓여서 오늘날 한국적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대가 됐다는 말이다. 최루탄 가스 냄새가 자욱한 민주화 투쟁이나, 의정 단상에서의 사자후(獅子吼)만으로 불과 40여 년 만에 이만한 수준의 정치발전을 이뤄 낼 수 있었을까.

지역구 고추 따는 국회의원

누구나 한국정치의 비효율과 부패 구조에 대해선 목소리를 높이지만, 우리 정치가 기층(基層) 밑바닥에서 특유의 소통과 스킨십을 통해 이룬 민주성(民主性)의 확산에 대해선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 서구(西歐) 정치학의 한계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정치는 관(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도 보살피는 특성이 있다. 과거에는 힘없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지역구 의원의 사무실부터 먼저 찾았다. 관의 고압적 자세와 무성의(無誠意) 앞에서 실망하기보다는 내 한 표에 담긴 주권을 의식해야 하는 의원 앞에서 하소연하기가 더 편했던 것이다.

물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정치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정치의 마키아벨리적 속성에다가, 정치인들의 일탈(逸脫)을 100% 막을 수 없는 현실 정치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압축 성장이 이런 인식을 부추기기도 했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정치는 어쩔 수 없이 낭비와 부패의 상징으로 치부돼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것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지만 정치의 힘은 강하다. 아니,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가 전후(戰後) 140여 개 신생국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정치의 힘이다. 정부, 시장, 시민사회의 3자를 선도 조정 통합하는 정치가 있었기에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우리 정치인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발전 과정에서 굴절과 좌절이 있긴 했어도 정치 없이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깨어 있는 정치인이라면 당당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의 우리 정치는 정말 낯 뜨겁다. 어떻게 당의 대선후보를 못 찾아 바깥을 기웃거리는가.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黨 밖에서 인물 구하기의 虛構

정치권 밖의 사람들에게 한국정치의 내일을 맡기겠다는 것은 정치인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도 대학 총장을 지낸 교수에게 구애(求愛)를 하다가, 그가 중도 포기하자 이번엔 중견기업체의 사장을 설득 중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한 시중은행의 은행장 이름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충청도 출신이어서 그렇단다.

이건 아니다. 지역구도와 정파 간 연대를 이용한 무슨 기막힌 선거 전략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이것이 정치의 참모습은 아니다. 정치를 더는 희화화(戱畵化)해선 곤란하다. 정치에 대한 환멸을 이토록 깊게 해 그 후과(後果)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나.

여권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거꾸로 ‘아무나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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