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영변 핵시설 첩보전 21년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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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의 고해상도 위성인 ‘아이코노스(IKONOS)’가 포착한 북한 평북 영변 지역의 원자로 시설. 로이터 연합뉴스
17일 미국의 고해상도 위성인 ‘아이코노스(IKONOS)’가 포착한 북한 평북 영변 지역의 원자로 시설. 로이터 연합뉴스
북한의 평북 영변 핵시설 폐쇄조치 이행시한(14일)을 3, 4일 앞둔 지난주 초.

경기 오산의 공군정보부대를 통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제공한 북한 영변 핵시설의 위성정보를 받아든 국가정보원 항사분석관은 바짝 긴장했다. 평북 영변의 원자로 주변에서 북한이 5MW 원자로를 폐쇄할 것으로 판단할 만한 징후가 잡혔기 때문. 정보 당국 내에선 “외부 손님들이 오니까 청소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하려는 움직임 같다는 해석이었다.

영변은 지금 북핵 게임의 ‘메인 배틀 필드(주 전선)’다. 인공위성을 통해 북의 일거수일투족을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는 미국과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린 북한 사이에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1986년 1월 영변 핵시설을 가동한 이후 21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같은 숨바꼭질은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북한이 미국의 감시를 역이용하려는 시도를 자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떻게 보나?=북한이 대포동2호 미사일을 발사하기 직전인 지난해 7월에도 미국은 위장막을 씌운 트레일러에 실린 대포동2호 미사일이 평남 남포시 잠진 군수공장을 떠나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로 옮겨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CIA가 보유하고 있는 군사위성인 키홀(KH) 12호를 통해서다. 평상시 600km의 고도를 유지하는 이 위성은 150km까지 고도를 낮추면 해상도 15cm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걸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도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현재 미국은 KH 11호와 12호 등 2대의 군사위성으로 북한 지역을 집중감시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5, 6차례 촬영하지만 특이 동향이 감지될 경우 24시간 밀착 감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구의 자전 속도와 맞추면 가능하다.

그 결과 원자로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계속 나올 경우엔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는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또 핵시설 주변의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은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는 단서가 된다.

▽북한은 어떻게 속이나=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는 미국의 밀착 마크를 북한이 역이용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2002년 말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무시전략’으로 일관하자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전격 재가동했다는 신호를 보내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추가 추출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원자로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감시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북한은 월동 장비의 가동을 통해 수증기 발생을 최대한으로 늘려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는 것처럼 꾸민 뒤 은밀히 플루토늄 추출 작업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수증기 분출만 놓고선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월동장비의 가동인지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정보 당국은 자료의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해상도 높은 사진에 더해 풍부한 배경지식, 통신정보, 상황정보, 휴민트(사람을 통한 정보)가 있어야 종합적으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실제로 한미 정보당국은 2004년 9월 양강도 삼수발전소 건설현장의 발파작업을 핵실험으로 오인한 적이 있다. 미국이 핵시설로 의심했던 평북 금창리 지하 시설은 텅 빈 동굴로 판명되기도 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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