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발의 포기]“어차피 안될일을…” 정치권 3개월 허송

  • 입력 2007년 4월 16일 03시 08분


코멘트
14일 오전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기로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논의하는 재원배분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기로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2007∼201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논의하는 재원배분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노무현 대통령 주연의 ‘개헌 드라마’가 95일 만에 막을 내렸다.

노 대통령은 1월 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임기 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에 시동을 걸었지만 관객인 국민과 정치권의 반응은 시종 싸늘했다. ‘노 대통령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은 50∼60% 선에서 요지부동이었고 개헌안을 발의하더라도 국회 부결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및 통합신당모임 등 5개 정당과 1개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11일 18대 국회 초반 개헌 추진에 합의해 노 대통령에게 ‘퇴로(退路)’를 열어줬다. 한나라당이 13일 의원총회에서 이를 당론으로 추인함으로써 노 대통령은 ‘개헌의 늪’에서 빠져나올 명분을 확보했다.

▽95일간 정치적 소모전=노 대통령이 1월 9일 담화를 통해 개헌 제안을 하자 한나라당은 “국정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개헌 논의를 중단하라”고 즉각 반발했다. 95일간 정치권을 온통 개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서막이었다.

노 대통령의 개헌 담화 발표 당일 본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2%가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각종 여론조사도 비슷한 추세였지만 청와대는 국민의 인식 부족을 탓하며 대대적인 홍보전에 돌입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종 토론회에서 임기 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 부처를 동원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e메일을 발송하고, 일부 일간지에 개헌 홍보물을 넣어 돌렸다. 한명숙 당시 국무총리는 정부 내 헌법개정추진지원단을 구성해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휩싸였다.

▽‘3각 빅딜’에 의한 윈윈(Win-Win) 해법=노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유보한 것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3각 빅딜’에 의해 정치적 ‘접점’을 찾았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갈수록 개헌 추진 동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적인 국민 여론은 물론이고 국회 부결 이후 예상되는 정치적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임기 말 역점 과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후속 대책도 쉽지 않은 과제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도 개헌 정국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통합신당 논의에 물꼬를 트기 위해서라도 개헌안 발의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 민주당과 통합신당모임이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에 반발하고 있어 개헌안 불씨가 남아 있을 경우 통합 논의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비롯한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개헌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협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청와대도 이런 상황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노 대통령의 개헌 공세를 무조건 막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개헌 이슈가 살아 있을 경우 당의 경선 레이스가 빛을 바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타결을 위한 물밑 접촉이 본격화됐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는 12일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으로부터 청와대의 강경한 분위기를 전해들은 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를 만나 막후 절충을 시도했다.

장 대표는 “대통령 성격상 (18대 국회에서 개헌 당론을 채택 안 하면) 정말 국회 본청 앞 돌계단에서 연설을 하겠다고 나올지도 모른다”며 한나라당의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나라당은 13일 의원총회에서 당론 확인 절차를 밟아 노 대통령에게 개헌안 철회를 위한 명분을 제공했다.

▽노 대통령, 조만간 철회 배경 밝힐 듯=노 대통령은 14일 개헌안 발의 포기를 발표할 때까지 고심을 거듭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기자들에게 “대통령은 ‘원 포인트’ 개헌이 8년 임기를 내다보면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 주는 일종의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거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6개 정파의 요청을 수용하는 것도 정치의 진전이라고 판단해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나 다른 경로를 통해 개헌안 발의 철회 배경을 직접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