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0명중 3명 실업자…월소득 100만원 이하 78%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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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훈련 여념없는 탈북자들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경기 안성시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자들이 5일 오후 자체 행사를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정부는 최근 정착 기본금을 축소하는 등 탈북자 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안성=변영욱 기자
적응훈련 여념없는 탈북자들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경기 안성시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자들이 5일 오후 자체 행사를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정부는 최근 정착 기본금을 축소하는 등 탈북자 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안성=변영욱 기자
《탈북자 1만 명 시대가 열렸다. 1990년대 초반에는 군인과 자수 간첩 등을 중심으로 한 해에 10여 명씩 자유를 찾아 왔지만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경제난으로 인해 이젠 매년 1000명 이상씩 대한민국으로 ‘대규모 이주’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까지 탈북자 9706명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고, 현재 300명 이상이 자유의 땅에 정착하기 위해 국내에서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인간적인 삶을 찾아 한국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었지만 ‘완전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탈북자 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에서의 3개월간의 교육만으론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지식과 역량을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동화돼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멀고도 험한 남한사회 적응=영상제작업체 대표인 김명(가명·44) 씨는 첫 번째 탈북에 실패해 북한에서 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끝에 2003년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원에서 접한 캠코더에 흥미를 느껴 비디오 제작, 편집 일을 시작했지만 북한 말투로 일감을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정착지원금으로 받은 돈도 사기당해 막노동을 하면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김 씨는 “직업의 자유가 없는 생활에 익숙했던 만큼 탈북자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이 아쉽다”고 말했다.

최승학(37) 씨는 국경 초소 분대장을 하다가 기밀문서를 갖고 1994년 탈북했다. 당시 6000여만 원이라는 ‘거금’을 정착금으로 받았지만 사기로 대부분을 잃었다. 그는 이후 식당종업원 노점상 등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9월 뇌출혈과 폐결핵으로 쓰러졌다. 최 씨는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려 했지만 탈북자라는 이유로 계속 외면당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취업난은 통계로 입증된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입국한 13세 이상 탈북자 133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해 12월 ‘새터민 정착실태연구’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취업자는 466명(70.3%)이고 29.7%는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실업률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공식 실업률 3.5%에 비해 약 8배나 높다.

취업자 466명의 고용형태도 △정규직원 114명(24.5%) △임시근로자 130명(27.9%) △일용근로자 222명(47.7%)으로 정규직 비율이 크게 낮았다.

월 소득도 50만 원 미만이 37.7%, 50만∼100만 원이 40%로 열악했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겠다”=정부가 정착을 위한 기본지원금을 10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줄이되 취업장려금을 3년간 900만 원에서 1500만 원으로 늘린 것은 탈북자들의 자활 의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탈북자 1만 명 시대를 맞아 기존의 보호형 탈북자 지원 정책을 자립형으로 전환하는 것이 제도 개선의 기본 방향”이라며 “탈북자가 가만히 있어도 돈을 주는 직접 지원금은 줄이고, 취업 등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탈북자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장기적으로 정착금지원제도를 폐지하고 사회복지제도 등 사회안전망으로 탈북자를 일반 국민과 차별 없이 지원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출신성분이 좋아야 성공?=드물지만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이 좋거나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의 경우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도 있다. 690 대 1의 경쟁을 뚫고 평양음악무용대학의 피아노 부문을 졸업한 김철웅(33) 씨는 2002년 탈북한 뒤 라이브 카페의 심야 연주자와 피아노학원 강사 등을 전전한 끝에 2004년 9월 한세대 음대 교수가 됐다.

현성일(48)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도 외교관 출신으로 전문성을 지녔고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도 있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경우. 그는 북한군의 실세 3인방 중 한 명인 현철해 대장의 조카다.

순전히 피나는 노력으로 우리 사회의 주류로 발돋움한 자수성가형도 있다. 대구에 살고 있는 한 탈북자(36)는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받아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경북대 의과대에 편입해 학업에 매진한 끝에 지난달 당당히 제71회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다.

▽탈북자가 국민으로 동화되기 위해서는=한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가 많아지면서 미국 등 제3국으로 이주하려는 이도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장윤옥 연구원 등이 2004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중국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 13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국행을 바라는 탈북자가 19%에 이르렀다. 중국에 머물겠다는 답변도 14%였다.

실제로 한국에 정착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탈북자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제3국으로 밀입국하는 탈북자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는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정착지원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며, 특히 미래세대인 탈북 청소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2015년 통일 가정땐 北주민 생계비로만 10년간 446조”▼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어서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21일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현대아산이 2004년 2월 북한 근로자 42명을 처음 채용한 지 2년 9개월 만이다.

국내 탈북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착한 사람들이고,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계약관계로 고용된 사람들이지만 이들에게 투입되는 돈은 앞으로 남북의 통일 비용을 산출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통일 비용의 개념을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실업보상과 고용대책 △노후화된 산업시설의 교체와 신규 시설 투자 △주택 보수 △외채 상환 비용 등을 망라하는 것으로 볼 경우 탈북자 정착 지원은 북한 주민의 기초생활보장에, 개성공단 투자는 북한지역 산업화 비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지난해까지 탈북자와 관련해 쓰인 예산은 약 2020억 원이다. 이 기간 중 입국한 탈북자가 8916명이니 1인당 평균 2265만 원을 지원한 셈이다. 이 지원액을 2270만 명에 이르는 북한 주민에게 1년간 지원한다고 가정할 경우 514조15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경제안보팀장은 “통일비용 중 북한주민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비용은 북한 물가를 기준으로 책정해야 하나 탈북자에 대한 정착지원금은 국내 물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향후 탈북자 수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에는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에는 50년간의 토지 임차료, 초기 사업 투자비와 정부의 기반시설 건설비 등 지금까지 총 3000억 원이 투자됐다. 1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근무하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연간 840만 달러(약 78억4000만 원) 정도의 임금이 매년 지급된다.

또한 현대 측의 계획대로 8년간 3단계에 걸쳐 개성지역 900만 평을 개발할 경우 2011년까지 82억8000만 달러(약 7조7310억 원)가 추가로 투자되며, 모두 35만 명의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연간 임금지급액은 2745억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지역의 산업화를 통해 경제를 회생시키고 탈북을 막을 수 있다면 통일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편 2005년 6월 삼성경제연구소와 국회 사회안전망포럼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통일된다고 가정할 경우 2015년부터 2025년까지 남한의 최저생계비 수준을 북한 주민에게 지원하는 데만 446조8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또 2015년 이후 10년간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북한의 산업화를 위해 쓸 경우 99조 원이 들 것으로 이 보고서는 전망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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