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땅보다 사람을 생각하라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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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서민만 땅을 찾는 게 아니다. 대박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꾼만 눈을 벌겋게 하고 땅덩이를 찾는 것도 아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도 땅을 찾는다. 일반 국민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정치 지도자조차 땅을 찾는다. 특히 남북통일을 해야겠다는 ‘민족의 지도자’까지 땅을 찾을 뿐만 아니라 더욱 불행한 것은 오직 땅만을 찾는 듯한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남이나 북이나.

그들은 하나같이 땅만 보지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보지 않는다. 영원히 거기 있고 값도 떨어지지 않는 ‘부동산’ 땅만을 보고 그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별로 안중에 없다.

남북의 분단이 그들에게는 다만 한반도의 땅덩어리가 38도선으로 분단되었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남북통일의 위업도 남쪽의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북진통일로 ‘실지(失地·잃어버린 땅) 회복’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쪽의 김일성에게는 조국의 ‘남반부(한반도 남쪽의 반쪽 땅) 해방’을 위한 남침전쟁이 곧 ‘통일전쟁’이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6·25전쟁 이후에도 땅, 토지, 국토에 대한 집착은 변함이 없다. 서독에선 그때까지 있었던 통독성을 없애 버린 1969년 바로 그해에 한국에서는 그때까지 없었던 ‘통한’ 기구를 정부 안에 두게 됐다. 그 이름이 또 ‘국토통일원’. 국토 찾기, 땅 찾기의 집념이 밴 이름이다.

박제화된 금강산-개성 관광

먼 옛날 얘기는 접어 두고 장족의 ‘진보’를 했다고 자랑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그들의 대북 정책의 현실에 눈을 돌려 보면 햇볕정책으로 금강산 관광 길이 뚫렸고 포용정책으로 개성공단이 마련됐다. 수많은 남쪽 사람이 그로 해서 금강산을 구경하고 송도(松都)도 구경할 수 있게 됐다. 갈라진 땅의 저쪽은 이렇게 해서 대량으로 가 보고 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갈라진 사람, 이산가족의 만남은 그에 비해 아직까지도 너무나 어설프기만 하다.

광복 전만 해도 오직 돈에 여유 있고 지체 높은 사람들이나 죽기 전에 한 번쯤 구경할 수 있었던 금강산을 이제는 ‘분단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생까지 정부의 여비 지원을 받으며) 지난해까지 이미 140만여 명이나 다녀오게 됐다. 그게 물론 그 자체로 나쁠 건 없다. 되레 경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토 분단의 비극을 참으로 내 권속, 내 몸의 아픔으로 앓고 있는 이산가족의 만남은 남북이 각각 100명씩 열네 차례, 다 합쳐도 겨우 3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산가족이 다른 민족이고 금강산 구경 가는 사람들이 또 다른 이민족이라면 그것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반세기가 넘도록 갈라져 살면서 앞으로 몇 년 목숨이 부지될지 모를 늙어 가는 이산가족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한쪽에서 100만 명대의 관광객이 북녘의 금강산을 찾아가 명승지만 구경하고 돌아온다면 그것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겠다며 말끝마다 ‘민족’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할 짓인가.

어렵사리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녘 땅에 들어가고도 철조망 쳐진 관광 코스 밖으로는 단 한 사람의 북쪽 사람과도 만나지 못하고 얘기도 걸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른바 ‘금강산 프로젝트’. 그게 ‘햇볕’과 ‘포용’의 무슨 성과이며 ‘민족 공조’에는 무슨 도움을 준다는 말인가.

비싼 돈 주며 땅만 찾아가 관광하고 사람은 못 만나게 하는 인간 무시, 아니 인간 멸시의 금강산 프로젝트. 그걸 정부가 적극 후원하고 있다니…. 심지어 북의 핵실험 이후에도 민족 무시, 아니 민족 멸시의 금강산 프로젝트에 대한 세계의 비난을 정부가 나서서 옹호하고 있다니….

이산-탈북 외면하는 인간무시란

많은 탈북자들이, 심지어 국군 포로 아버지의 유해를 남쪽에 묻으려 사선(死線)을 넘어온 탈북자조차 우리나라 영사관서 푸대접받는다는 얘기는 인간 멸시의 ‘햇볕’ ‘포용’ 정책의 필연적 소산이라 하면 잘못일까.

한중 수교 후 60여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옌볜 동포가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며 “내가 다시는 이 땅을 찾지 않을 것이고 다시는 이 땅을 내 고국이라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을 통일 후 우리가 북녘 사람들에겐 안 들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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