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요충지 회령은 검열강화로 '공포의 도시'"

  • 입력 2007년 2월 5일 17시 34분


코멘트
국경경비대 군인 20여 명이 최근 집단 탈북한 것으로 보도된 북한 함경북도 회령 시가 북한 당국의 검열 강화에 따라 공포의 도시로 변했다고 북한 소식통들이 일제히 전했다.

회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의 고향으로 곳곳에 혁명사적지가 있다. 중국에 가까워 외부와의 접촉이 잦은 탓에 최근 북한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로 변했다.

이런 회령이 탈북자들의 주요 통로 역할을 한 까닭에 북한 당국으로부터 '검열의 본보기'로 지목됐다는 것. 국경 경비대원의 집단 탈북도 강화된 단속과 구금, 붙잡힌 경비대원의 처형 등 일련의 사건 여파로 발생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혁명 사적지에서 탈북 요충지로=회령 시는 인구 약 15만 명으로 많은 전현직 간부가 배출된 지역. 일제 시대 항일투쟁에도 적극 참여해 출신성분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러나 회령은 1990년대 중반부터 탈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탈북 요충지로 변했다. 좁은 강을 건너면 말이 통하는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이기 때문.

회령 출신의 탈북자 김진호(가명) 씨는 "가문에 항일투쟁 참가자 1~2명쯤 예사로 갖고 있던 회령이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넘어간 사람이 부지기수인 고장이 됐다"고 말했다.

회령 정세는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달되며, 각종 북한 관련 동영상이 이곳을 통해 유출된다. 외부세계 소식을 많이 접하다 보니 체제 불만도 높다. 지난해 10월에는 100여명의 주민이 당국의 일방적인 장마당 이전에 반대해 집단 항의를 벌이기도 했다.

▽"자본주의 전초지인 회령을 정화하라"=회령에서 무역에 종사하는 정일국(가명) 씨는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이 올해 생모의 90주년을 맞아 회령을 '깨끗이' 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전했다. 자본주의 문화 유입의 전초기지가 된 회령을 묵과할 수 없다는 방침으로 해석된다.

정 씨는 "지시가 하달된 뒤 당, 군, 보위부, 보안서, 검찰소, 재판소가 인력을 총동원해 합동 검열대를 구성하고 강도 높은 단속에 들어갔다"며 "첫 조치로 회령에 기지를 둔 무역회사들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납북어부 최욱일 씨 탈북사건이 크게 불거지자 합동조사단 60여 명이 회령에 몰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단속의 강도가 워낙 높다 보니 탈북 방지 책임을 진 국경경비대의 현직 중대 정치지도원까지도 지난해 말 탈북해 태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 받고 사람만 신고하라"=탈북자들에 따르면 회령의 북한 국경경비대원들 사이에서는 '제대할 때까지 북한 돈 500만 원(약 160만 원) 벌자'는 말이 유행이었다. 평균 월급 3000원을 받는 북한 노동자가 140년 동안 벌어야 하는 금액이다. 이들은 탈북자 1명을 도강(渡江)시켜주는 대가로 보통 중국 돈 500 위안 (북한 돈 20만 원)을 받아왔다.

회령 두만강 건너 편 마을에 거주하면서 밀수를 하는 조선족 주민 김 모 씨는 5일 "종종 밤에 넘어와 술대접을 받고 가던 북한 경비대 장교들이 요즘은 검열 때문에 꼼짝 못한다고 전화로 알려왔다"고 밝혔다.

김 씨는 "요새는 탈북이 거의 불가능해 경비대원들의 돈줄이 끊기고 있다"면서 "북한이 경비대 군인들에게 '뇌물은 받되 사람만 신고하라'는 파격적인 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 에 따라 경비대 군인들이 '도강비'를 받은 뒤 현장에 다른 군인들을 보내 체포하기도 한다고 김 씨는 덧붙였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